[한인투데이] 지난 8월 7일(목) 오전 11시 30분, 주상파울루대한민국총영사관(총영사 채진원. 이하 총영사관)에서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인정증서 전달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별도의 식순 없이 진행됐으며, 구본일 부총영사가 한국 출장 중인 채진원총영사를 대신해 직접 증서를 전수했다. 수여식에는 석갑수 단군건설 대표의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 참석해 뜻깊은 순간을 함께했다.
석 대표는 1959년 4월 14일생으로,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10대 후반이었다. 당시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연행된 그는 장시간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견뎌야 했다. 이후 ‘불온 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혀 군에 강제 징집됐으며, 사회생활 전반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
특히 대기업 입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는 등 장기간에 걸쳐 개인과 가족의 삶이 크게 제약됐다. 석 대표는 브라질 한인 이민자 가운데 유일하게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번 인정증서에는 “대한민국의 민주헌정 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회복·신장에 이바지했으므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증서를 드린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발급일은 2025년 6월 2일이며, 발급 기관은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다.
석 대표는 소감에서 “47년 전 일을 찾아 인정해 주시니, 함께 고초를 겪은 동지들이 생각나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개인적인 명예 회복뿐 아니라, 당시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창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유신독재에 맞선 시민과 학생들의 저항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 사건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해 대통령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고, 언론을 강력히 통제했으며, 정치·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적 권리를 억압했다.
1979년 가을, 경기 침체와 정치적 억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시민 참여가 급격히 늘어났다. 시위는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 수만 명 규모로 번졌고, 정치 자유와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군과 경찰은 강경 진압에 나섰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과 학생이 체포·연행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장기간 불법 구금과 고문을 당했고, 일부는 학업·취업·병역 등 사회생활 전반에서 오랜 차별을 받았다. 부마민주항쟁은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어진 정치 격변의 중요한 전조가 되었으며,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2000년 제정돼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와 유족에게 국가 차원의 사과와 금전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역사적 기록 복원과 교육 활동도 병행되고 있다.
이번 상파울루 총영사관에서의 증서 전달은, 한국을 떠나 이민 생활을 하며 긴 세월 침묵 속에 살아온 피해자가 47년 만에 공식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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