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출생년도만 알면 쉽게 접근… 과거 캐내 스토킹·협박, 부작용도 심각
한국의 인터넷 시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독특한 시장이다. 특히 추억과 향수에 기반한 인적인 네트워크에 착안한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1인 미디어에 이처럼 열광하는 나라는 없다. 싸이월드 가입자수 675만 명.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유인태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재벌 총수 딸까지 ''싸이질''을 했다. 기업들은 ''직장 내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1인 미디어는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았다.
싸이월드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사무실 내에서 "싸이질"을 못하게끔 "금지령"을 내린 회사들도 속속 늘어가고 있다.
정치인 중 가장 활발한 "싸이질"을 하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일 `싸이 1촌`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생활 노출 부분과 중독성이다. 요즘 젊은이라면 누구나, 하루에 2시간씩은 한다는 이른바 ''싸이질'' 때문에 빚어지는 황당 요지경 사례들을 IS리포터들이 취재했다. /사회부
유부남 C 씨(30.회사원)는 회사에 출근해 오전 업무를 대충 처리한 뒤 사무실 눈치를 휙 둘러본 후 본격적인 ''싸이질''에 들어간다. C 씨는 우선 자신의 미니홈피에 밤새 누가 무슨 글을 남겼는지 확인하고 일일이 답글을 달아준 뒤 1촌들의 홈피를 한 바퀴 순례하는 것으로 1차 싸이질을 마무리한다.
C 씨의 ''2차'' 싸이질은 자신과 과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미니 홈피를 찾아보는 것. 그날 그날 생각나는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구경한 뒤, 옛날 여자친구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며 추억에 젖는다. 물론 C 씨의 부인은 남편의 이런 모습을 알지 못한다.
▲ "너도 싸이 때문에 헤어졌냐?"
요즘 젊은이들은 ''애인과 헤어졌다''고 하면 친구에게 "너도 싸이월드 때문에 헤어졌냐"고 묻는다. 그만큼 이런 케이스가 흔하다는 뜻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1인 미디어가 인맥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배우자나 미니홈피를 통해 이성친구나 배우자의 과거를 알게 돼 헤어짐이나 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알아봤자 좋을 게 없는 개인정보들이 너무 많이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 "너 성형한 것 다 알아"
문제는 타인의 미니홈피를 너무 쉽게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의 이름과 출생년도, 성별만 알면 간단한 검색을 통해 그 사람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글이나 사진 등을 무단으로 퍼갈 수도 있고 ''파도타기'' 등의 기능 등을 활용하면 타인의 주변사람의 일상도 구경할 수 있다.
이때문에 간혹은 사이버 상의 협박, 스토킹 등 불상사도 생긴다. 특정인의 과거를 캐내 위협하거나 성형수술 사실을 알아내 사이버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골탕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
▲ "비밀은 없어"
의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근 손 모 씨(23)는 얼마 전 자신의 싸이홈피에서 "앞으로 시위 진압 나올 때 몸조심하라"는 위협성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시위 진압 현장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표를 보고 싸이홈피를 뒤져 협박한 것.
1인 미디어는 특별한 방문자 로그온이 필요없다. 그야말로 누구나 볼 수 있다.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들까지 보안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 "솔직히 싸이홀릭입니다"
싸이월드 등 1인 미디어는 특유의 재미 때문에 심한 중독성이 있다. ''싸이홀릭''(싸이 중독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대학생 박 모 씨(22.여)는 "현실의 나와, 또 다른 세상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라면서 "하루라도 안하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안티 싸이월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생 김 모 씨(24)는 "한때 싸이홀릭이었지만, 사이버 상의 홈피가 산 사람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