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공연을 앞둔 사물놀이 산파 김덕수

2007.07.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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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 산파 김덕수 ‘신명의 길 위에서 50년을 걷다’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앞세워 산과 강을 넘었다. 드넓은 우리 광야에 가득하던 신명의 리듬은 바다 건너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었다. 그의 장구 소리가 울려 퍼지는 땅마다 덩실덩실 한국의 춤사위가 피어났다. 길에서 어우러져 길을 떠돌며 길에서 인생과 사랑과 이별을 배워온 세월. 예인으로 살아 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50년이 되었건만 그의 눈빛은 오롯이 빛나고 목소리는 호령하는 듯 쩌렁쩌렁하다. 그의 장구 장단에 담긴 혼 그대로다.

김덕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는 우리의 유전자가 변하지 않는 한 우리의 신명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전통 리듬은 민족 고유의 언어예요. 언어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도 그 근본은 바뀌지 않듯, 오랜 세월 형성되어 온 민족의 리듬에 새 옷을 입혀도 우리의 색깔과 신명은 결코 변하지 않아요.” 김덕수의 사물놀이를 ‘멜로디는 음악에 속하지만 리듬은 인간 자체에 속한다는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평한 야마시타 요스케(피아니스트)의 말처럼, 사물놀이의 리듬은 음악적 감동과 함께 ‘내가 누구인가’ 하는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워 왔다.

“우리 고유의 자연 환경에서 난 재료로 우리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울림이기에 다른 것이죠. 인간이 최초로 만든 통신수단 중 하나가 두드리는 것이에요.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민족의 울림이야말로 우리의 정신, 철학, 영혼을 담고 있는 것이죠. 그 울림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신명, 민족 혼을 일깨우는 거예요.”내년이면 김 교수가 산파 노릇을 한 ‘사물놀이’가 탄생 30주년을 맞는다.

농악, 판굿, 판소리 등에 흩어져 있던 전통 장단을 한 데 모아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 사물놀이. 1960년대 중반 이후 사라진 농악 공연을 꽹과리, 징, 장구, 북으로 구성된 타악 앙상블 형태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처음엔 서민의 가무악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으니, 그것이 세계무대를 뒤흔들게 될 줄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처음부터 “20년을 내다봤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공연을 했어요. 1964년 도쿄를 시작으로 매 올림픽 경기마다 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갔죠. 가는 곳마다 우리의 신명이 되살아났어요. 수없이 많은 해외 현장에서 우리의 전통 리듬을 검증받고 이미 가능성을 확인한 이후 사물놀이가 탄생한 거예요.” 우리의 타악기 네 개로 뽑아내는 한국의 장단은 예스러우면서도, 또한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변화하는 세련됨을 보여 줬다. 그 열정, 유연함, 신명에 세계인은 압도되고 환호했다. 특히 1983년 텍사스에서 열린 ‘세계 타악인 컨벤션’ 공연은 최초로 세계 타악 전문가들에게 한국의 사물놀이를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거리 공연에서부터 전통의 서양음악 홀, 나라 대표로 우리 음악을 선보이는 큰 잔치마당까지 그는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1978년 지하 소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국내외에서 공연한 횟수는 총 6000여 회. 일찍부터 세계 최고의 고급문화 집결지인 뉴욕의 공연장에서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 입은 벽안의 청중들이 신명을 이기지 못해 무대 위로 올라와 한국의 손사위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한류(韓流)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제 세계 문화의 흐름 속에서 한류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나 현재 일부에서 일고 있는 한국 가요와 드라마의 인기에서는 진정한 방향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의 그의 생각이다.

문화예술 근본에 “우리의 정신, 우리의 에너지, 고유의 문화가 담겨 있어야 진정한 경쟁력을 갖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현재 세계인들이 즐기는 재즈, 레게, 힙합 등의 음악 원류는 각국의 민족 음악이에요. 민족 고유의 호흡과 멋이 삼바니 탱고니 플라멩코 등의 민속 리듬으로 나타난 것이고, 이것을 메이저급 회사들이 잘 포장해서 보급한 결과가 바로 현재 세계 음악의 판도예요. 한참 걸렸죠. 대중은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제 동북아 차례예요. 대한민국의 리듬이 세계 음악 시장을, 세계의 기운을 바꿔 줄 시간이 됐어요.”

김 교수는 “사람과 땅과 하늘의 에너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것이 민족의 문화”라면서 “타악의 장단만큼은 대한민국이 보물창고”라고 했다. 그 두드리는 에너지가 세계 문화의 판도를 바꿀 것이기에 한류가 대세라는 설명이다. 타악이 다른 악기, 다른 장르의 음악에 대해 포용력이 크다는 것도 가능성을 높인다. 그만큼 얼마든지 새로운 옷을 입혀 현대적인 감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이다. 이 공연의 첫 번째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김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신명을 시대에 맞게 재창조했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가 예술총감독으로 있는 사물놀이패 한울림에서 시도하는 ‘연희극’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과거에 흥보가, 춘향전, 심청전이 있었다면 2007년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요즘의 세태`를 주제로 전문 예인들이 가무악을 펼친다.

이렇듯 재창조된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느냐, 또한 그것이 한류까지 이어지느냐의 상당 부분은 우리들에게도 달려 있다. 경제는 달려가듯 발전해 왔지만 우리의 정신은 아직도 문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바이올린을 해야 예술이고 집집이 치지도 않는 피아노는 한 대씩 다 있으면서 장구, 꽹과리 치면 천박하다고 생각하죠. 우리 삶 속에서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던 시절엔, 아무리 어려워도 혼인 잔치에 돼지 잡고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춤추고 노래하던 넉넉함이 있었어요. 돈 없으면 결혼도 못 하는 요즘 같은 일이 어찌 생깁니까? 너무 빨리 우리의 것을 잊게 되면서 좋은 정신과 풍습까지 다 버려서 안타까워요.” 우리의 생활문화가 잊히면서 민족의 풍류도, 넉넉함도 사라졌다고 그는 개탄했다.

우리 음악을 알기 위한 노력은 전통을 보존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이유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속에 한국인으로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실리적인 차원에서도 전통을 아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역설한다. “문화대국이 힘을 갖는 시대가 됐어요. 서양의 뮤지컬은 줄줄 꿰면서 우리의 덩더쿵 춤사위, 진도아리랑 장단을 모른다면 부끄러운 일이죠. 우리의 것을 알고 삼바, 탱고도 안다면 어떤 분야에서건 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것이 진정한 경쟁력인 겁니다.”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는 우리 젊은이들은 이제 사물놀이를 배워 간다. 세계가 우리의 것을 주목하므로, 이제는 우리의 것 안에서 세계적인 명품이 나올 수 있다는 인식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섯 살에 아버지 손 잡고 들어간 남사당 시절은 그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이다.

신명나는 놀이마당이 곧 배움터요 삶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 곁에서 흥이 나는 대로 장구 치고 줄을 타고, 그러다 성공하면 그저 구경꾼들과 노는 듯 선을 보였다. 그때 놀이판 현장에서 느껴지던 흥과 신명이 김덕수와 사물놀이를 태동시켰다.

“살기 어려웠지만 오히려 최고의 예인으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어요. 물론 우리 삶과 전통문화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이 가장 그립지요.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자연스레 꽹과리, 장구 치던 때는 따로 아이들에게 전통이 무엇인지 가르칠 필요가 없었어요. 언어처럼 우리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습득했으니까요.” 공연장과 삶이 철저히 나뉘면서 생활문화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규모에 상관없이 예술 현장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파장들을 생활 속에서 느끼기 어려운 ‘삭막한 시대’라고 그는 말한다.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해야만 진정한 예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생활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더덩실 어깨춤 추는 축제 문화가 살아나야 해요. 그 안에서 한국인의 정체성, 창의력, 경쟁력이 저절로 돌고 돌아 전승되는 겁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맞춰 창의적으로 전통을 전승하는 데 바친 지난 50년.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다. 제자들이 세계 곳곳의 강단에 서서 우리 장단을 이야기하고, 그 곳에 꽹과리, 징, 장구, 북이 들어가는 그날까지 그의 신명 나는 장구 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해방 이후 서양문물이 들어와서 우리가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했지요. 이젠 우리가 줄 차례예요. 우리의 신명을 세계 문화의 주류사회로 끌고 가야 합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고 서둘러 될 일도 아니지요. 하지만 분명 변화는 시작되고 있어요. 제가 못하면 전문 교육을 받은 저의 다음 세대가 하게 될 겁니다.” 우리의 삶에서, 세계 속에서 한류는 숙명이며 대세라고 말하는 그의 신명은 북받쳐올라 하늘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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