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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삼국사』로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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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인종 23년인 1145년경에 김부식(金富軾)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의 정사이다.
   한국 국민 중에 김부식의『삼국사기’(三國史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고, 한국 고대사의 ‘정본’(定本)이다. 그러나 책의 표지에『삼국사’(三國史)』라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물로 지정된『삼국사기』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3개 판본이 전한다. 보물 525호는 1573년(선조 6년)에 경주에서 찍어낸 목판본이다. 옥산서원에 보관 중이어서 ‘옥산서원본’이라 한다. 보물 722호는 13세기 후반에 찍은 것으로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됐다. 보물 723호는 1512년(중종 7년)에 간행됐는데 ‘정덕본’이라고도 한다. 세 판본 모두 표지에는 『삼국사』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4년 일본 사람이 일본어로 번역한『삼국사기 역』이고, 이것이 조선총독부가 편찬한『조선사』로 이어져 최남선, 이병도의 책도 이를 따랐다.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이 별 생각 없이『삼국사기』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렇다. 문제는『삼국사』가『삼국사기』로 바뀐 데는 일제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문정창은 ‘광개토대왕훈적비문론’(1977)에서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본국의 역사는 ‘紀’(기), 제후국이나 속국의 역사를 ‘記’(기)라 했던 중국의 사례에 따라 본국의 역사인 『日本書紀』(일본서기·720년)의 ‘紀’에 대한 제후국의 역사책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記’를 붙여『三國史記』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국편과 교육부는 “목차나 실록에도 있으므로 이마니시 류가 처음으로 ‘삼국사기’라 부른 것이 아니어서 문정창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그들이 작업에 참고했다는 자료들을 보면 오히려 문정창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마니시 류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다수 기록이『삼국사』인데도『일본서기』의 하부 사서인 것처럼 폄하하려는 목적에 따라 소수 자료를 내세워『삼국사기』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정부와 학계는 지엽적인 자료를 가지고 잘못을 정당화하려고만 하지 말고, 객관적인 확인 절차를 밟아『삼국사기』를『삼국사』로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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