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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주민, 6차 핵실험 후 '방사능 오염' 귀신병 소문에 공포"

  

지난 3일 6차 핵실험 과정을 참관 중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뉴시스

북한 주민들이 지난 3일 단행된 6차 핵실험 이후 방사성 물질 오염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10일 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의 한 소식통을 인용, “6차 핵실험이 진행된 지난 3일 이후 풍계리 핵실험장 근처에 살았거나 핵실험에 참여한 사람은 사망할 수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며 “(김정은) 정부가 핵실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핵실험 이후) 북한 장마당 상인들 사이에서 ‘핵실험 때문에 귀신 병(원인불명의 병)에 걸린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3일 실험 때 큰 지진이 일어나 동요한 것도 (소문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신문은 “북한이 핵실험 후 주변 환경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8일 방사성 물질인 미량의 ‘제논’을 검출했다고 발표했다”면서 “이 가운데 이번 핵실험으로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는 미확인 정보도 있다”고 언급했다.

방사능을 띠는 제논은 자연에는 거의 없고 핵폭발 과정에서 발생한다.

앞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북한의 핵실험 5일 뒤인 지난 8일 ‘제논-133’(Xe-133) 핵종이 국내에서 검출됐다고 밝힌 상태. 원안위는 검출된 제논의 유입경로를 기류 분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북한 핵실험과 연관성이 있는지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핵실험 후 공기 중 제논 동위원소들의 구성 비율을 분석하는 데 성공하면 핵폭탄 원료나 제조 방식, 기술에 관한 정보도 확보할 수 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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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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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lorenjo 작성자 2017.09.10. 07:29

방사성 물질 오염에 벌써 1명 사망설...

김정은이 자꾸 핵실험 해보지 먼저 누가죽나 ???...

똑똑한 멍청이 정은이 지발등 찍는줄은 모르고...

댓글
2등 야구사랑 2017.09.10. 08:03

랴듐은 다이나 마이트 와 함께 지상에 나와서는 안되는 물질 입니다.

원자번호 92호 우랴늄 그것을 발견하고 연구하던 마리퀴리 부인 그녀는 1934 년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하였읍니다  주요사인은 라듐 방사능 중독 이었읍니다.

핵이란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물질 입니다. 김정은이가  좁은 국토에서 금수강산을

더럽히고 본인까지도 죽는줄 모르고 저짓거리를 하고 있읍니다.

다음은 노벨 수상자로 우랴늄 을 연구 하다가 생을 마감한 마리퀴리 부인의 이야기 입니다.

네이버 블로거 에서 퍼온 글입니다



라듐’을 발견한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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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번호 88번, 주기율표 2족인 알칼리 토금속의 방사성을 띤 원소는 ‘라듐’입니다.
원소 중에 가장 무거운 라듐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빛살(Ray)을 뜻하는 ‘radius’에서 따왔습니다. 라듐은 오늘날 의료용, 공업용 방사선사진법, 발광도료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라듐을 발견한 사람은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번 붙는 과학자 마리 퀴리입니다.

그녀는 여성 최초로 소르본 대학 교수이자, 여성 최초로 2번의 노벨상(물리학, 화학)을 수상한 인물이며, 프랑스 위인들만의 묘지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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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스쿼도프스카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수학교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기억력이 뛰어나고 비범한 재능을 보여 16세에는 러시아 고등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청년기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투자 잘못으로 마리의 집은 몰락하게 되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정교사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던 마리는 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언니인 브로냐와 서로의 공부를 도와주기로 상의합니다.

언니가 먼저 의학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고, 그동안 그녀는 가정교사를 하며 언니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1891년 언니가 공부를 마치자 그녀 역시 파리로 떠나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마리 퀴리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빵과 차만 먹으며 물리학과 수학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녀의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고, 그녀는 1893년 소르본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 최초로 여성 물리학 박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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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마리는 소르본 대학의 교수이자 물리학자인 피에르 퀴리와 1897년 결혼을 해 퀴리라는 성을 얻게 됩니다. 마리가 방사선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논문 주제를 찾던 중 앙투앙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베크렐 선 현상에 주목하면서였습니다.

방사선은 기체를 이온화시키므로 기체에 방사선을 쪼이면 전류가 통하는데, 마리 퀴리는 같은 물리학자인 남편 피에르가 만든 전류계를 이용하여 방사선의 강도를 측정하면서 새로운 방사성 물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898년 그녀는 토륨(Th)이 방사선을 방출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마리의 연구에 주목한 남편인 피에르도 자신의 연구를 중단하고 그녀와 함께 방사성 물질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우라늄과 토륨을 분리·정제하는데 사용한 광석인 피치블렌드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세기가 순수하게 분리·정제한 우라늄이나 토륨보다 더 세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라늄이나 토륨보다 훨씬 강한 방사성 물질이 그 안에 들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꾸준히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이들은 ‘폴로늄’이라는 원소와 1898년 12월, 더욱 강력한 방사능을 방출하는 새로운 원소인 라듐을 발견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들은 라듐이나 폴로늄을 원소나 화합물 형태로 순수하게 얻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부부는 그 원소를 더욱 순수한 상태로 분리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전 재산을 투자해 의과대학의 해부실로 사용되던 낡은 헛간에서 무려 8톤의 우라늄 폐광석을 수천 번에 걸쳐 분리하고 정제해 마침내 1902년에 0.1g의 염화라듐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연구 덕분에 마리는 1903년 6월 소르본느 대학으로부터 박사학위 논문을 승인받았고, 그해 말에는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두 부부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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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벨상을 받은 두 부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1906년 4월 19일 남편 피에르가 길을 가다가 마차에 치여 그만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큰 충격을 받은 마리는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생전에 남편이 자주 했던 “어쨌든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힘을 내서 남편 대신 소르본 대학의 교수직을 맡아 강의를 하며 라듐을 정제, 분리하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1910년 순수한 상태의 라듐을 얻어내는데 성공했고, 1911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단독 수상했습니다. 이로써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임과 동시에 두 개의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됐습니다. 물리학자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은 마리 퀴리는 방사화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해 방사성 동위원소들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1914년에는 ‘라듐연구소’를 설립해 암 치료 등 라듐 방사선의 의료적 활용에 나섰습니다. 이어 1920년대에는 의학 아카데미의 일원으로 방사성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규명하고, 이를 의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라듐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악성 빈혈이나 백혈병으로 잇달아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고, 마리 퀴리 역시 장기간에 걸친 방사능 연구로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려 1934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는 마리가 생을 마감한 날로부터 61년 뒤인 1995년에 다시 한 번 사용됩니다.
그녀의 업적을 기려 프랑스 정부가 그녀의 유해를 파리의 팡테옹에 이장한 것입니다. 팡테옹은 프랑스의 국가적 위인들만이 묻히는 국립묘지입니다.

그녀의 열성적인 연구는 뢴트겐의 X선과 함께 19세기 말의 양대 발견으로 불리며 핵물리학과 화학계에 현대 물리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마리 퀴리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성 과학자로 추앙받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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