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백인 여성 중 대학 졸업자와 고등학교 중퇴자의 수명이 9.3년 차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나와

01
성별과 인종에 기초한 기대 수명의 격차는 줄어드는 반면 학력에 의한 기대 수명의 차이는 1990∼2010년 2배 이상으로 커졌다.


출생 시점의 기대 수명이란 개념은 다들 잘 안다. 현재의 사망률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면 지금 이 순간 태어나는 아기가 살 수 있는 평균 연수를 말한다.

미국의 경우 평균적으로 볼 때 여성이 남성보다, 백인이 흑인보다, 부유한 고학력자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널리 알려졌다.


유럽이나 다른 고소득 국가들의 사정도 그와 비슷하지만 특히 미국에서 그 격차가 훨씬 크다. 그러나 우리가 최근 들어서야 이해하기 시작한 사실이 있다. 학력이 미국인의 수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이라는 점이다.

내 연구에 따르면 성별과 인종에 기초한 기대 수명의 격차는 줄어드는 반면 학력에 의한 기대 수명의 차이는 1990∼2010년 2배 이상으로 커졌다.

예를 들면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이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백인 여성보다 9.3년을 더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된다(1990년엔 그 차이가 2.5년이었다). 백인 남성의 경우 학력에 따른 기대 수명 차이는 11.9년으로 나타났다(흑인 남녀의 격차는 각각 4.7년, 8.6년이다).


더 불길한 점은 1990년 이래 25세의 기대 수명이 저학력 백인 사이에서 줄었다는 사실이다(여성은 3.1년, 남성은 약 0.5년 짧아졌다). 그런 지속적인 기대수명 단축은 1세기 이상 미국을 비롯해 대다수 선진국에서 전례가 없다.

그에 비해 고등학교만 졸업한 미국 백인의 기대수명은 2000년 이래 6개월 미만 정도 늘었다. 역사적 기준으로 보면 대단찮은 증가다. 그러나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의 기대 수명은 지난 20년 동안 상당폭 늘었다(여성은 약 3.7년, 남성은 5.2년 길어졌다).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미국 흑인의 기대 수명이 학력을 불문하고 1990년 이래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흑인의 기대 수명이 백인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인구 집단에 따른 기대 수명 격차에 초점을 맞춘 이전의 연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제의 수명 변이에서 나타나는 학력의 차이를 조사했다.


통계에서 ‘변이’는 ‘평균’ 다음으로 중요한 척도다. 변이는 실제 관측된 수치가 평균치 주변에 어느 정도로 널리 분포됐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인구 집단 2개의 기대 수명이 똑같다고 해도 각각 자세히 살펴보면 수명 변이가 더 큰 집단의 경우 사망 연령을 예측하기가 훨씬 어렵다.

수명 변이가 아주 작다면 대다수의 사망 연령은 평균치 가까이 집중된다. 그러나 변이가 크다면 일부는 평균보다 더 일찍 사망하고 일부는 평균보다 훨씬 오래 살 것이다.


학력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인구 집단에 근거한 내 연구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받은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살 뿐 아니라 수명 변이도 가장 작다. 그들 대다수는 거의 비슷한 나이까지 아주 오래 산다는 뜻이다.

학력이 낮은 미국인은 기대 수명이 크게 낮을 뿐 아니라 수명 변이도 훨씬 크다. 1990년 이래 변이의 폭은 계속 늘었다. 예방 가능한 사고나 질병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나는 이번 연구에서 수명은 무엇보다 교육 수준이 좌우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의 사망 연령은 90세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학력이 낮은 백인 남성은 60세에 사망할 확률이 85세에 죽을 확률과 비슷하다. 그만큼 기대 수명이 낮고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은퇴 후 고생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저축이 필요할까? 몇 살에 은퇴해야 할까? 노후를 위해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할까? 자녀를 잘 부양하고 유산을 남길 정도로 오래 살 수 있을까?


수명 변이는 사회보장제도나 고령자 의료보장제도 등 노후를 위한 사회경제적 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제도는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시대에 ‘기여’와 ‘급여’ 사이의 균형을 잡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평균과 변이 양면에서 수명 격차가 벌어지면서 분배의 공정성 문제도 제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회경제적 사다리의 아래쪽에 있는 사람이 오래 살 가능성이 작다면, 또 생존 가능성이 더 불활실하다면, 차등 정년퇴직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도입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차이를 둬야 할까?

이런 문제는 평균과 변이를 따지기보다 훨씬 복잡하며 상아탑 너머로 멀리까지 확장된다.

[ 필자는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과 인구보건 전문 연구원이다. 이 기사는 학술지 데모그래피에 실린 논문 ‘1990∼2010년 미국의 학력에 따른 기대수명과 수명변이 추세’를 바탕으로 재작성됐다.

출처 - (뉴스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