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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1위 나이키, 파는 걸 우리보다 잘할 뿐'

"아디다스가 더 기능적 반드시 '넘버 원' 될 것"

[Weekly BIZ] [Cover Story] "업계 1위 나이키, 파는 걸 우리보다 잘할 뿐"
헤르베르트 하이너 아디다스 회장은 작년 11월 '루트 2015'라는 성장 비전을 발표하며 2015년까지 매출을 170억유로(약 240억달러)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 1위인 나이키와의 격차를 크게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나이키의 매출도 270억달러 수준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 10년간 하이너 회장이 일궈낸 탄탄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아디다스가 업계 1위 나이키를 제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강하다.

―나이키 신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나이키는 매우 훌륭한 스포츠용품 회사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하지만 우리가 더 좋은 기능성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키가 신발은 더 많이 팔지 않습니까?

"주로 미국에서 그렇죠. 미국은 나이키의 안방이고 매우 큰 시장이죠."

―근데 그 격차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이 더 낫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 제품이 보다 기능적입니다. 우리는 보다 혁신 중심적인 회사이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듭니다. 물론 사견입니다만."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파는 걸 나이키가 더 잘합니다. 자기 브랜드와 상품 콘셉트를 어떻게 팔아야(market) 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 퍼포먼스(운동능력) 측면에선 우리가 더 좋은 신발을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아디다스 제품이 훨씬 좋으니 좀 알아달라는 호소처럼 들렸다.

―2등에 만족 안 하시죠?

"1등이 되고 싶은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희의 제1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방식의 성장입니다. 순익도 빠르게 커져야 하고, 재무 건전성도 좋아야 합니다. "

―그렇다면 언제쯤 나이키를 제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모르죠. 우리의 5개년 계획인 '루트 2015'와 나이키가 내놓은 5개년 계획들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우리는 주요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싶습니다. 언제가 우리는 넘버 원이 되겠지만 언제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아시는데 말씀 안 하시는 거죠?

"물론이죠.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만 말하진 않겠습니다. (당신 말이) 옳습니다."

―생각하시는 기간이라도 말씀해주시죠. 가령 2015~2020년 사이라든지.

"안 됩니다. 제가 말했다가는 '이 해에 나이키 제친다면서요' 하면서 앞으로 계속해서 따질 것 아닙니까." 


헤르베르트 하이너 아디다스 회장
"최고를 위한 최고의 운동화 우릴 움직이는 건 이 '욕망'이다"
“아디다스 엔진은 마케팅 비용 아닌 투자로 봐…
월드컵·올림픽에 많은 돈 쓸수록 
우리 브랜드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더 자주 사는 계기가 돼”

연장 후반 11분. 스페인의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감각적으로 찔러준 공이 페널티 지역 오른쪽으로 파고든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앞에 착지했다. 이니에스타의 오른발에 감긴 공이 골네트 왼쪽에 꽂히자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은 일순 폭발음 같은 함성과 부부젤라 소리로 뒤덮였다.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꺾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으로 등극하던 순간이다.

이 순간 또 다른 승자가 웃음 지었다. 경기를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7억명의 시청자는 TV 화면이 이 승자의 상징물로 도배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벅찬 감격에 잔디 위를 내달리는 스페인 선수들의 유니폼에도, 클로즈업된 축구공에도, 마침 경기장을 둘러싼 광고판들에도 온통 '스리 스트라이프(Three Stripes·세 개의 줄무늬)' 즉, 아디다스 로고가 지천이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한 골 장면은 최소 열 차례 리플레이됐다. 그때마다 나이키 유니폼을 입은 네덜란드 선수들의 침통한 표정이 오버랩됐다.

헤르베르트 하이너 아디다스 회장
 헤르베르트 하이너 아디다스 회장

축구에서의 1등은 다른 어떤 종목의 1등보다 의미심장하다. 축구만큼 범지구적인 스포츠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열광하는 지상 최대의 축제 월드컵이 이를 웅변한다. 남아공 월드컵 기간 한 번이라도 TV 생중계로 경기를 지켜본 누적 시청자는 260억명. 2008 베이징 올림픽(47억명)을 압도한다. 그 해 아디다스가 축구 부문에서 올린 매출은 15억 유로(2조3700억원). 2008년 올린 사상 최대 매출 기록(13억 유로)을 가볍게 넘어섰다. 축구용품 시장에서 부동의 1위다.

지난 7일 독일 남부 헤르초게나우라흐의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헤르베르트 하이너(Herbert Hainer·57) 아디다스 CEO 겸 회장에게 "도대체 마케팅 비용을 얼마나 썼습니까?" 하고 물었다.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 작년) 아디다스 전체 매출의 13.3%를 마케팅에 썼습니다." 작년 아디다스의 전체 매출은 120억 유로. 마케팅에 축구 매출액을 넘어서는 16억 유로(2조5000억원)를 썼다는 얘기다.

아디다스의 축구화 궨아디퓨어궩의 최신모델이 지난 2일 독일 바이에른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아디다스 본사에서 선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아디다스의 축구화 궨아디퓨어궩의 최신모델이 지난 2일 독일 바이에른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아디다스 본사에서 선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1920년 창업자 아디 다슬러(Adi Dassler·1900~1978)가 '모든 운동선수에게 최고의 운동화를 만들어주겠다'는 결심으로 스포츠용품 사업에 뛰어든 지 91년. 축구에서의 절대적 존재감을 바탕으로 100년 가까이 세계 스포츠계를 호령한 아디다스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이너 회장은 주저 없이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우리 업계에선 브랜드와 제품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은 아디다스에서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사는 게 아닙니다. 제품을 사죠. 당신은 최고의 축구화, 최고의 러닝화를 사고 싶어합니다. 마케팅은 아디다스의 엔진이자 원동력(driving force)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고의 인재와 돈을 마케팅에 투입합니다. 제품 마케팅, 스포츠 마케팅, 광고, 홍보에 말입니다."

[Weekly BIZ] [Cover Story] 이 '삼선(三線)'에 축구가 숨쉰다
아디다스는 스포츠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의 운동팀, 운동선수와 스폰서 계약을 맺거나 FIFA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공식 후원사가 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도발에 가까운 아디다스의 마케팅은 창업자 아디 다슬러의 유산이다. 그는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스타 플레이어 마케팅을 최초로 고안한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그는 미국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Jesse Owens)가 큰일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직접 차를 몰아 선수촌까지 찾아갔다. 그는 오언스에게 손수 만든 육상화를 건넸고, 오언스는 이 신발을 신은 채 육상 4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전 마케팅을 투자로 보지 비용으론 안 봅니다. 만약 돈이 더 있다면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쓸 겁니다. 더 많은 돈을 광고, 스포츠 마케팅, 월드컵, 올림픽에 쓸수록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더 많이 알아보고 우리 브랜드 제품을 더 자주 산다는 걸 아니까요. 그래서 전 마케팅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디다스는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기가 바짝 얼어붙었던 2009년에도 마케팅 예산을 거의 줄이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다이베스트 앤 인베스트(Divest & Invest)'란 비상경영 계획을 운영했습니다. 한편으론 낭비 요소를 줄이지만(divest), 다른 한편으론 투자하자(invest)는 것이었죠. 마케팅은 당연히 투자의 대상이었습니다."

기업은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마케팅 비용을 줄인다. 소비가 위축되면 마케팅 효과도 줄어든다는 것이 경영학의 일반론이다.

"브랜드에는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투자를 그만두면 소비자들은 금방 당신의 브랜드가 뭘 팔려 하는지 망각하게 되니까요." 

독일 바이에른주 샤인펠트에 있는 아디다스 공장에서 직원이 수제 축구화를 제작하고 있다. /블룸버그
 독일 바이에른주 샤인펠트에 있는 아디다스 공장에서 직원이 수제 축구화를 제작하고 있다. /블룸버그

헤르베르트 하이너 회장은 1954년 7월 3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딩골핑의 정육점 차남으로 태어났다. 스포츠를 좋아해 청소년기에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바이에른주 란츠후트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9년 프록터앤갬블(P&G) 독일 지사에 근무하다 1987년 아디다스의 용품(공·가방 등) 담당 영업본부장으로 영입됐다. 1999년 그룹 부회장을 거쳐 2001년 회장에 올랐다.

그는 바이에른 출신답게 독일 남부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구사하며 '마케팅 예찬'을 이어갔다. 그는 2006년 인수한 계열사 리복의 예를 들었다. 리복은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토닝화(몸매 교정용 신발) '이지톤'을 출시하면서 대규모 TV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2008년의 3배가 넘는 2760만달러를 쏟아부은 것이다. 업계에선 '허리띠를 졸라매도 모자랄 판에 웬 낭비냐'며 빈정거렸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미국 토닝화 시장에서 '이지톤'은 단숨에 점유율 40%로 뛰어올랐다.

독일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때 신었던 아디다스 축구화. 현역 시절 월드컵 3회, A매치 103회에 출전한 베켄바워는 펠레(브라질), 요한 크라위프(네덜란드)와 함께‘20세기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 꼽힌다. 탁월한 리더십과 경기 운용능력으로‘카이저(der Kaiser·황제)’라 불렸던 그는 아디다스 가문과 오랜 친분을 쌓기도 했다. /블룸버그
 독일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때 신었던 아디다스 축구화. 현역 시절 월드컵 3회, A매치 103회에 출전한 베켄바워는 펠레(브라질), 요한 크라위프(네덜란드)와 함께‘20세기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 꼽힌다. 탁월한 리더십과 경기 운용능력으로‘카이저(der Kaiser·황제)’라 불렸던 그는 아디다스 가문과 오랜 친분을 쌓기도 했다. /블룸버그

"당시 대다수 회사는 그런 광고 캠페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아껴야 했으니까요.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에겐 투자하기 참 좋은 타이밍이었죠. 투자하는 회사가 없는 상황에서 당신 회사만 투자한다면 소비자들은 당신을 주목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무적(inspirational)'이란 말을 강조했다.

"아무리 최고의 제품이라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고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소비자들을 고무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기업의 훌륭한 유산도 좋고 기업의 유구한 역사도 좋습니다. 홍보를 잘하거나 브랜드 캠페인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날은 특히 소비자와 소셜 미디어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말이죠. 뭘 하든 고무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소비자는 그 브랜드와 사랑에 빠져 제품을 사게 될 것입니다." 

독일 바이에른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아디다스 본사 건물 앞에 나부끼는 아디다스 그룹 계열사들의 깃발. 왼쪽부터 아디다스 그룹, 아디다스, 리복, 락포트, 테일러메이드. /아디다스 제공
 독일 바이에른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아디다스 본사 건물 앞에 나부끼는 아디다스 그룹 계열사들의 깃발. 왼쪽부터 아디다스 그룹, 아디다스, 리복, 락포트, 테일러메이드. /아디다스 제공

축구로 혁신의 역사를 쓰다

하지만 훌륭한 제품 없이 마케팅이 될 리 없다. 창업자 아디 다슬러는 마케팅을 강조하기 이전에 제품 혁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했던 사람이다.

"아디는 아시다시피 '모든 운동선수에게 최고의 운동화를 만들어주겠다'며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노력했고 무려 762개의 특허권을 보유했죠. 전 이것이 여전히 아디다스의 철학이라고 믿습니다. 당신과 인터뷰하면서 제가 혁신이란 말을 최소한 20번은 한 것 같습니다. 아디 다슬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꽤 성공적으로 혁신을 이뤘고 지금 우리도 성공적으로 혁신을 해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아디다스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존재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60년을 더 존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끊임없는 혁신이 아디다스 성공 요인이란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혁신은 너무 뜻이 좁습니다. 혁신보다 욕망(desire)이라고 하겠습니다. 매일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선수들이 더 좋은 성적을 내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욕망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우리 회사 깊숙이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디다스를 움직이는 건 이 욕망입니다."

아디 다슬러는 1925년에 이미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운동화에 스파이크를 박는 파격을 선보였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그가 만든 스파이크화를 신고 출전한 독일 육상선수 리나 라트케(Lina Radke)는 여자 800m 경기에서 2분16초8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이 기록은 16년간 깨지지 않았다. 1964년엔 무게 135g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운동화 '도쿄64'를 출시했다.

'수영복은 작을수록 좋다'는 편견을 깨고 전신 수영복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도 아디다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아디다스의 이큅먼트 전신 수영복을 입고 출전한 호주의 이언 소프(Ian Thorpe)는 3관왕이 됐다.

[Weekly BIZ] [Cover Story] 이 '삼선(三線)'에 축구가 숨쉰다
하이너 회장을 비롯해 아디다스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축구는 아디다스의 심장이자 영혼"이란 말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이 말에서도 짐작되듯 아디다스의 혁신이 가장 화려하게 분출한 종목은 단연 축구다.

아디다스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서독팀에 잔디 상태에 따라 스파이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든 '스크루인스터드(screw-in studs)' 축구화를 제공했다. 이 신발을 신은 서독팀이 3년간 국제경기 32전 무패를 기록한 당대 최강 헝가리를 3대2로 격파하고 '베른의 기적'을 쓰면서 아디다스는 축구화의 지존으로 자리매김했다.

1979년에 내놓은 '코파 문디알'은 '축구화의 영원한 베스트셀러'란 찬사를 들으며 지금도 생산된다.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등 세계적 축구선수들이 애용하는 축구화 '프레데터'는 1994년에 선보인 것이다. 작년 월드컵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축구화 'F50 아디제로'(무게 165g)를 출시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Lionel Messi)의 축구화로 유명해졌다. 하이너 회장은 '프레데터'와 'F50 아디제로'를 지목하며 "가장 자랑스러운 아디다스의 혁신"이라고 했다.

축구에서 아디다스의 존재감을 극대화한 것은 축구공이다. 우리가 아는 가장 전형적인 축구공은 검은 오각형 조각 12장과 하얀 육각형 조각 20장을 섞어 만든다. 이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 아디다스가 제작한 공인구 '텔스타'에서 기원한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불라니'를 비롯해 1970년 이후 모든 월드컵 경기의 공인구를 아디다스가 만들었다. 하이너 회장은 축구공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축구공은 찼을 때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야 합니다. 이때 문제 되는 게 축구공 표면에 붙어 있는 패널과 패널 사이의 틈입니다. 여길 차면 공이 엉뚱한 데로 날아가니까요. 과거 축구공의 최대 문제는 패널이 너무 많다(32개)는 것이었습니다. 즉 패널 개수를 최소화해 틈을 차게 될 확률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게 혁신입니다. 아디다스는 패널을 줄이는 데 기술력을 집중했고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불라니'에 와서는 그 수를 8개까지 줄였습니다. 패널도 과거처럼 2차원 평면이 아니라 3차원 입체로 제작했고 '고열 접합'이란 방식을 적용해 패널과 패널 사이의 틈도 최소화했습니다."

하이너 회장은 10년 전 취임하면서 "아디다스는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혁신의 리더가 되고 싶다"며 "우리는 매년 최소 1개의 새로운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혁신은 단순한 색상 변경이 아닙니다. 혁신은 말 그대로 전혀 새롭고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제품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장에 영원히 남을 새로운 혁신들을 선보여왔다고 자부합니다."

―운동선수라면 모르겠지만 일반 소비자들도 그렇게 혁신을 중요시할까요?

"전 보통 사람들도 혁신적 제품을 원한다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켜 줄 제품을 찾습니다. 가령 골프의 경우 당신은 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골프 클럽을 원합니다. 축구의 경우 당신은 볼을 더 잘 찰 수 있는 축구화를 갖고 싶어합니다. 축구공은 더 빨리 날아가야 하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스포츠에서 이런 걸 찾습니다. 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더 나아지고 싶기 때문이죠. 이런 것은 혁신적인 정신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재료와 기술로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어야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두 번의 큰 위기

아디다스가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아디의 뒤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Horst Dassler)가 1987년 4월 9일 암으로 급사하면서 아디다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당시 아디다스 지분을 나눠 가진 호르스트의 여동생 4명이 경영책임자도 세우지 않은 채 이권 다툼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아디다스의 중추인 마케팅이 마비되며 회사는 표류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당시 독일 신문들이 아디다스 제품에 대해 "배불뚝이 독일 남자들이 토요일 잔디 깎을 때나 입는 옷"이라고 조롱했다. 망해가는 회사가 골치 아팠던 네 자매는 1989년 회사를 헐값(5억1200만달러)에 팔아치웠다. 가업(家業)으로의 아디다스는 이렇게 종말을 맞았다.

하이너 회장이 P&G에서 아디다스로 옮긴 게 이 시기였다. 그의 입사일은 1987년 4월 1일. 호르스트 다슬러가 죽기 8일 전이었다.

"당시 우리는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경영은 엉망이었습니다. 명확한 전략이 없었고, 명확한 리더도 없었고,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신경질과 공포로 점철됐습니다. 아디다스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반전이 일어난 건 프랑스 기업가 로베르 루이드레퓌스(Robert Louis-Dreyfus)와 그의 사업 파트너 크리스티앙 투르(Christian Toures)가 1993년 아디다스를 매입해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들은 명확한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고비용의 유럽 공장들을 닫는 대신 극동에서 아웃소싱을 했고, 비용을 절감해 마케팅에 투자했습니다."

이들은 죽어버린 마케팅을 살리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데이비드 린치 등 전도유망한 영화감독들을 총동원해 광고를 만들었다. MTV와 유로스포츠에서 방영된 이 광고는 젊은 층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오래전 단종된 인기 운동화들을 재출시하는 '오리지널스'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막 불기 시작한 복고 바람을 제때 감지한 덕에 매출이 급증했다.

결국 아디다스는 부활했다. 1995년엔 독일과 프랑스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가 건실해졌다. 하이너 회장은 지금도 루이드레퓌스와 투르를 "내 생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는다.

―루이드레퓌스에 이어 회장이 된 지 10년 됐습니다. 당신에게 최대 위기는 언제였나요?

"2009년입니다. 2008년은 (9월까지만 해도)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덕에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월에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진 겁니다. 심각한 위기였습니다."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경영팀이 '다이베스트 앤 인베스트' 준비에 들어간 것은 2008년 9월이었습니다. 위기 때는 물론 비용 절감, 고용 동결, 업무 효율화 같은 다이베스트가 중요하지만 투자는 더 중요합니다. 위기는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값진 기회니까요. 제가 수차례 말했습니다. '아디다스는 위기를 거쳐 전보다 강해지고 싶다'고요. 위기 땐 항상 기회가 옵니다. 기업을 매입할 수도 있고, 일들을 능률적으로 만들 수 있고,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습니다. 시절이 좋을 땐 잘 안 하는 일들이죠. 당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실행했습니다."

아디다스는 이 시기에 기업 3곳을 인수했다. 골프 부문 강화를 위해 골프웨어 브랜드 애시워스를, 개인 운동 코칭 시스템인 '마이코치' 개발을 위해 텍스트로닉스 등 전자업체 2곳을 사들였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량 자산을 우리 포트폴리오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2010년 경기가 살아나자 이 자산들은 우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디다스를 축구 브랜드로만 보지 마라"

아디다스의 매출은 2001년 61억1200만유로에서 작년 119억9000만유로로 10년 동안 두배가 됐다. 금융위기로 2009년 잠깐 주춤한 것을 빼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장했다.

―꾸준한 성장 비결이 궁금합니다.

"10년 전 처음 시작할 때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전 '스타일' 부문에 커다란 기회가 있다고 봤습니다. 꼭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스포츠 의류를 입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것으로 봤으니까요."

'스타일'은 '퍼포먼스'와 함께 아디다스 브랜드를 구성하는 양대 사업부문이다. '퍼포먼스'가 경기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반면, '스타일'은 패션을 강조한다. 하이너 회장은 취임 첫해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와의 접촉을 시작으로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제러미 스콧(Jeremy Scott)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과 협업에 나섰다.

"모두 스타일 쪽 시장을 키우기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아디다스를 보다 패셔너블한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축구화 브랜드나 남성적(male-driven) 브랜드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는 루이드레퓌스 사장 시절 시작한 '오리지널스' 사업도 강화했다. 역시 '스타일'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조치였다. 하이너 회장은 "(1969년 첫 출시된 농구화)'슈퍼스타',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기념해 출시된)'SL-72', (1971년에 나온 테니스화)'스탠 스미스'가 대표 상품"이라며 "오리지널 비즈니스 전체를 회춘(rejuvenate)시켜 자랑스럽다"고 했다.

작년 아디다스가 '스타일' 부문에서 올린 매출은 약 22억유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축구 매출(작년 15억유로)의 1.5배다. "아디다스가 축구화 브랜드나 남성적 브랜드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다"는 하이너 회장의 말에 수긍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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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신발신발 2016.02.18. 09:41
교포분들에게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K2라는 브랜드 있어요. 의외 디자인 좋고 내구성과 시용성이 좋습니다.
나중에 한번 사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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