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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원칼럼
2021.06.02 22:30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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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애기도 아닌 반세기 전 우리들 식생활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한 서민 생활의 한 단면이다. 그때의 아픔을 덜어냄으로 오늘과 내일의 생활상(生活相)이 변화되기 위함이다. 


현대인의 먹거리와 1950년대의 먹거리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은 가히 먹거리의 천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아버지 우리형제 조카까지 한 집에서 4세대가 살았다. 그렇게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새벽 4시쯤 이면 부엌에서 무를 써는 도마소리로 아낙네들의 힘겨운 하루 끼니준비가 시작된다. 


무를 많이 넣어 지은 밥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시형제들 그리고 자식들에게 차례대로 무가 덜 섞이도록 밥을 퍼주고 나면 그나마 밥 알 몇 개 없이 거의 무만 남은 무 밥을 먹고 부엌 아낙네들은 허리도 못 피고 일에 파묻혀 부실한 끼니에 헛헛한 허기 중에도 아이들 젖을 먹이며 살아야 했다.  


먹은 것 없이 젖먹이를 둔 아낙들은 더욱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혹독한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견디었나 하고 그 때 그 꿈 같은 시절을 회상한다.


아침 나절이었다. 닭이 계란을 낳았다고 꼬꼬댁 하면서 풍구 뒤에서 나왔다. 뒤뜰로 가는 길목에 풍구를 뒀기 때문에 풍구 끝자락 밑에 알을 낳았다. 그 때 형님이 곧장 다가가서 계란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깨어 먹고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좀 떨어진 곳에서 형님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었나 보다.  


풍구 앞을 나오는 형님의 뒤 쭉지를 지게 작대기로 후려치는 것을 목격하고 난 후로 나는 팔십이 넘은 지금 이 나이에도 당시 상황이 떠오르곤 하면 소름 끼치면서 삶의 전의(轉義)를 상실할 정도로 끔찍한 추억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 가족제도에서의 희생이고 그 때의 계란가치는 서민들의 최고의 영양식품이었다. 뼈가 삭아 내릴 정도의 아픈 추억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때 형님은 폐병으로 고생하실 때다. 


우리 형제들은 6남매로 위로 누나 둘 형 하나 있었다.  제일 큰 누나는 폐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 후 형님 또한 폐병을 앓고 계셨다. 


그 병에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은 그 때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형님은 슬하에  두 아들과 나중에 딸 하나를 얻었으나 딸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폐병이라면 죽는 확률이 반 이상이 되다시피 할 시대였다. 지금은 폐병이라도 사망에 이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결국 형은 그 이후 2년을 더 살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형님을 낙동강 변에서 화장하여 보내드렸다. 


형님이 단지 계란만의 한을 안고 돌아가셨으랴 만 어려운 시대를 건너온 한 사람으로 계란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형님의 형상이 떠오르니 나도 어쩌면 계란의 한을 더하여 안고 형님 곁으로 가려나 보다. 


지금은 계란이라면 싼값에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닌가. 더군다나 닭 많기로 유명한 브라질에 살면서 가지런히 잘 정돈된 계란 30개 한 판이 사과 2개 값 정도니 얼마나 푸짐하고 살기 좋은 세상인가 싶다. 


나는 계란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형님의 얼굴이 계란 위에 새겨진다. 흔한 세월 살면서 흔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여! 계란이 그렇게 귀한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아무리 흔한 먹거리나 소모품도 절약하고 아껴야 한다. 내가 흔하다고 해서 모두가 흔한 것은 아니다.


‘새 것으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옛 것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얻어진 인내로 파괴된 사회질서 속을 중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저력을 개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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