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원칼럼

행복을 만지작 거리면서

by 투데이닷컴 posted May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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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이가 깊이 들어 갈수록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처럼 지금껏 없던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외적 변화가 있다면 늙음 밖에 찾아 온 것이 없는데 말이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생각이 작아지고 작아지고 하더니 급기야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바로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사실인 것을 일찍 터득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서 오늘에 도착했다.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 보면 헛발질로 세월을 소모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 많던 기회의 날들은 지나가 버리고 쭉정이 만 남아 내 앞에 뒹굴고 있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곰곰이 살펴보니 더러는 행복이 내게 와서 머물고 있는데도 느끼지 못했고 까짓것 이것이 행복이야? 하고 외면하고 지난 것을 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더 큰 것이라야 행복이라 하고 작은 행복엔 문을 닫아 버렸더라는.. 


행복이란 걸 멀리서 찾아 헤멧으나 내 속에 있는 것을 알 리가 없는 어린나이고 보니 놓치고 마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러고 보면 인간의 생존 자체가 묘하기만 하다. 돈을 많이 모으고 높은 명예의 자리에 오르면 행복한 것으로 안다.


행복은 반드시 돈과 명예를 차지해야 만 행복한 것으로 생각하나 절름발이 행복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얼마 전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가 다민족으로 형성돼 있는 미국에서 자살 율이 제일 높다고 나왔다. 이유가 이렇다. 


“쩔어 있는 체면 문화와 출세지향적인 성향이 높은데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나쁘다고 단언하기엔 무리도 있으나 너무 외형에 치우친 경향이 높아서이다. 그러니 내 속에 내재(內在)돼 있는 행복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손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이것이 행복이라 느끼지 못 하고 먼 곳에서 헛된 공상으로 허우적대다 그만 그것을 놓치고 만다.


작은 행복에서 큰 행복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행복이 있으니 작은 행복은 일상에서 발견 할 수 있으나 큰 행복이라 하는 것은 한 평생에 한 두 번이나 혹 몇 차례가 있을지 아니면  한 번도 오지 않을 수 있다. 먼 곳을 찾아 큰 행복만 찾아 헤 멜 것이 아니라 내 턱 밑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참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 와 불평의 문으로 나가버린다”는 만고의 진리도 깨닫지 못 하고 놓쳐버리는 것이 범인들이 일상이다. 최선을 다 해 살면서 꼭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해결 해 버려야지 미루게 되면 죽음을 불러들이는 일이라 했으니 매사에 충실 하는 일이 행복을 통 째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21세기 들어와서는 더더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물질의 속성은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것이 인간의 물욕의 타성이니 끝없이 갖고 싶어 하게 된다. 이 현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정신수양이며 정신무장이다. 비 신앙인이라도 기도를 안다. 기도가 무엇인가 바로 정신수양을 하기 위한 묵상이다. 가장 작은 데서부터 만지작거려지는 작은 행복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큰 행복이 따라 들어온다. 작게 만지작거려지는 작은 행복이 큰 행복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길거리에 오그리고 누워 있는 노숙자나 부지런히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그들 보다 더 행복한 가를 가늠하고 다시 한 번 행복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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