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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는 채팅중

시아버지는 하루종일 바쁘시다. 디지털 카메라로 중고차 사진을 촬영한 후 집에 와서 인터넷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 올린다. 그리고 ‘독수리타법’으로 자동차 정보를 입력한다.

이제 곧 있으면 핸드폰으로 구매희망자가 연락을 해올 것이다. ‘빨리 팔렸으면, 많이 팔렸으면’ 하고 바래본다. 돈이 생기면 손자 녀석들 용돈이라도 한번 더 줄 수 있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컴퓨터 바탕화면은 온통 푸른 논밭 풍경이다. 지난 여름 선산에 성묘를 갔을 때 직접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오신 고향 정경이다. 스무살에 상경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어렵게 어렵게 ‘서울사람’이 되셨지만 마음은 아직도 경북 산골마을에서 뛰놀던 더벅머리 총각이다. 이제 차 타기도 힘들어 고향에 자주 가보지 못하는 게 못내 서럽다는 시아버지. 그나마 컴퓨터를 켤 때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고향마을 밭머리 풍경이 마음을 달래준다.

시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시어머니가 타주시는 커피 한잔을 들고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자식들이 깔아주고 일러준 메신저를 띄우고, 헤드셋을 백발 위에 얹고 여기 저기 초대장을 보낸다.

“이 녀석들아. 할애비다. 얼른 접속해라. 우리 채팅하자.” 웹 카메라가 있는 큰손자네 집과 채팅할 때는 부쩍부쩍 자라는 손자 녀석들 얼굴도 직접 볼 수 있다. 조그만 화면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자들의 얼굴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웹카메라가 없는 작은 아들네하고 대화할 때는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어 조금 아쉽다. 제일 멀리 떨어져 살아 가뜩이나 얼굴 보기 힘든데, 웹 카메라 하나에 얼마나 한다고 그걸 아끼며 카메라를 사지 않는 둘째네가 얄미울 때도 있다신다. 그래도 둘째 아들네 손자 녀석이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쨍쨍한 목소리로 들려줄 때는 미운 마음도 눈 녹듯 싹 사라져버린다.

시아버지는 고향에서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셨다고 한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평생 한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하지만 남들이 가르쳐주지 않은 한자며 영어를 혼자서 터득하실 만큼 총기도 밝으시고 지적 호기심도 왕성하시다. 어느날은 손자들이 깔아놓고 간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도전하신다며 며칠 밤을 새다시피 해 자식들이 건강부터 챙기시라고, 그렇잖으면 게임을 지워버리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당부를 한 적도 있다.

처음 시집을 와 시댁에 제일 먼저 선물한 것이 컴퓨터다. 노인네 ‘장난감’치고는 좀 과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워낙 컴퓨터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신 터라 솔직히 ‘울며 겨자먹기’로 사드린 것이었다. 남들이 다 사니까 괜한 욕심에 저러시는 거려니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시댁에 들를 때마다 시아버지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시질 않았다. 아예 옆에 앉혀놓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적어놓은 메모까지 들이미시며 해결해 달라고 조르셨다.

그렇게 기를 쓰고 하나씩 하나씩 배워오신 컴퓨터 실력이 이제 인근 할아버지 중에서 으뜸이라며 자랑하실 땐, 글쎄 이런 표현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아버님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처음에는 한글프로그램으로 동네 친목계원 주소록 만들기에 도전하시다가 이제 한글프로그램은 아주 능란하게 사용하게 되셨고, 그 후 게임에 한창 재미를 붙이시더니, 최근엔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셨다.

그때쯤 아버님은 중고차 거래 일을 시작하셨는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해 사업을 하시면 용돈벌이가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속마음을 내비치셨다. 그래서 칠순기념으로 자식들이 최신형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해드렸다. 새 컴퓨터가 도착한 날 들뜬 목소리로 좋아하시던 시아버지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디지털 카메라로 이것저것 찍어보시고 컴퓨터 상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확인할 때의 놀라시는 모습이란. ‘진작 바꿔드릴걸’하고 후회할 만큼 죄송스러운 기억이다.

컴짱, 인터넷짱, 우리 시아버지. 며느리가 부엌에서 밥할 때보다 당신하고 나란히 앉아 컴퓨터 가르쳐줄 때가 제일 예쁘다시는 우리 시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우리 함께 채팅하며 살아요. 네?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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