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MBA


logo

 
banner1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우리 부부가 사는 법

인생의 전환점은 예기치 않은 경우에 찾아온다. 내가 남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도 우연찮은 사건에서 비롯됐다. 몸과 마음이 무척 지쳐있을 무렵이었다. 그 즈음 시집의 일로 생긴 우울증은 자살의 유혹까지 느낄 정도였다. 더 이상 버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전환점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나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 운동을 하러간 남편은 돌아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소식이 감감했다. 서서히 불안감이 밀려왔다. 세시간이 지나고 자정을 넘기자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왠일인지 그동안 밉기만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돌아오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만 같았다. 미움이 사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순간이었다.

남편은 새벽 2시가 지나서 돌아왔다. 그 날부터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멀쩡할 때 손을 잡는다는 게 너무 어색하고 쑥스러워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손을 잡았다. “이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짧은 기도였다.

그러기를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진 후 남편에게 고백을 했다. “사실은 오랫동안 당신을 미워하고 있었어. 당신이 늦게 들어온 그 날부터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는지 알아?” 그러자 남편은 "밤마다 내 손잡고 기도하는 줄 나도 알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때부터 그를 나에게 맞추려는 욕심을 접었다. 그리고 그 사람 존재 자체로 만족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남편을 대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그대가 아름다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있기 때문이다’라는 광고 문구도 있듯이 가깝게 있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보니 그제야 그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사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게 어떤 거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쉰이 넘은 우리 부부는 아직도 서로를 잘 맞춰주지는 못한다. 신세대 부부처럼 살뜰하게 챙겨줄 줄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내가 하는 일에 적극적인 지지도 할 줄 모르고 그저 침묵으로 인정하는 정도다. 늦게 들어갈 일이 생겼을 때, “저녁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와”라는 말밖에, 그는 마누라를 위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의 기대도 욕심도 없다. 그의 지지가 있건 없건 난 내 꿈을 꾸며 또 이룰 준비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독립한 후에 시골에 가서 살기로 약속을 했다. 모아둔 돈도 없으니 생활비 부담도 적은 농촌에 가서 농사지으며 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공기 맑은 곳에 살면 건강에도 좋을 테고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적당히 몸을 움직이며 죽는 날까지 일을 하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

며칠 전 남편과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땔감으로는 솔잎이며 낙엽이 최고라는 등 시골살이 준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조용한 곳에 살다가 차례로 저 세상으로 가야지. 당신 나 먼저 죽거든 다른 여자랑 재혼해서 재미있게 살아”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내가 먼저 죽어야지. 나한테 올 여자가 어디 있어? 당신밖에 없지”라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다. 남편의 진짜 속마음을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고생시킨 마누라에게 미안해서 한 말 일거라는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30년 세월 정말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한 배를 탈 겁니다”라고.


door.jpg

추천인 129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댓글 쓰기

에디터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상호명 : 투데이닷컴(웹)/한인투데이(일간지) / 대표자 : 인선호 / E-Mail : hanintodaybr@gmail.com/webmaster@hanintoday.com.br
소재지 : R. Jose Paulino, 226번지 D동 401호 - 01120-000 - 봉헤찌로 - 상파울로 - 브라질 / 전화 : 55+(11)3331-3878/99721-7457
브라질투데이닷컴은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정식 등록사입니다. Copyright ⓒ 2003 - HANINTODA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