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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 빠울로(São Paulo) 450주년 기념 특집 (2)

썽 빠울로(São Paulo)를 만드는 가장 썽 빠울로(São Paulo)적인 사람들

◆ 북동부 지역의 대표적인 인물

떼레자 꼴로르(Tereza Collor)


떼레자 꼴로르(Tereza Collor)는 첫 번째 남편인 뻬드로 꼴로르(Pedro Collor)를 따라 썽 빠울로(São Paulo)에 처음 와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남편이 사망하고 최근 재혼한 그녀는 썽 빠울로(São Paulo)를 제 2의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다.

떼레자가 어렸을 때 그녀를 비롯한 6명의 어린 형제들은 북동부 지역의 알라고아스(Alagoas)의 더운 날씨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썽 빠울로(São Paulo)는 “추운 날씨”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식구들은 히오 지 쟈네이로(Rio de Janeiro)나 썽 빠울로(São Paulo)를 갈 때면 항상 “남쪽으로 간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페르난도 꼴로르(Fernando Collor)의 동생이었던 전남편 뻬드로 꼴로르 지 멜로(Pedro Collor de Mello)와 함께 성인이 된 후 밟았던 썽 빠울로(São Paulo)에서 그녀는 언론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남편인 뻬드로(Pedro)가 법정 진술을 하기 위해 함께 수 차례에 걸쳐 쌍빠울로(São Paulo)를 왕복했던 그녀는 “당시에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우리의 용기를 칭찬해 박수를 치곤 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막수지 호텔(Hotel Maksud)에 머물며 항상 경호원들과 함께 다녔으며 레로뽈도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폭탄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급히 장소에서 벗어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현재 40세인 그녀는 그때와는 달리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다. 사업가인 구스따보 알브레이치와 2002년 재혼한 그녀는 자신이 경영하는 의류 매장인 “The”에서 하루 종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남으면 박물관이나 쌀라 쌍빠울로(Sala São Paulo) 또는 유명 브랜드의 신제품을 보기 위해 오스까르 프레이리 거리(R.Oscar Freire)를 자주 다닌다고 말했다. 식당에 가는 것을 즐긴다는 그녀는 북동부 특산 음식에 대해서 “차라리 알라고아스(Alagoas)에 직접 가서 먹는 게 최고”라고 충고(?)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집안에 그물 침대를 걸어놓고 하늘을 바라보면 저절로 여기가 바로 북동부 지역이라는 생각에 잠긴다”고 웃으며 말했다.

◆ 썽 빠울로(São Paulo)속의 일본

후이 오타케(Rui Otake)


건축 설계사인 후이 오타케(Rui Otake)는 일본 이민자의 후손으로 식당에서 일본 문화의 영향력을 크게 느낀다고 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빠스(Paz) 거리에 살고 있었던 한 소년은 썽 죠엉(São João)기념일에 밤하늘을 쳐다보고 수많은 형형색색의 열기구를 바라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자신도 직접 귤 모양이나 상자 모양, 여송연 모양의 열기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 소년이 바로 지금 브라질에서 가장 영향력있으며 권위 있는 건축 설계사로 큰 후이 오타케(Rui Otake)(65)다.

그가 옛날에 살던 거리는 아직도 모오까(Moóca)에 위치해 있지만 “옛날의 조용하던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1936년 일본에서 브라질로 이민 온 그의 어머니인 토미에 오타케(Tomie Otake) 역시 브라질 화단에서 유명한 화가다. 후이 오타케(Rui Otake)는 르네상스 호텔, 유니크 호텔과 찌에떼 환경 공원을 설계하는 등 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 설계사다.

예술가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유롭게 자랐던 관계로 후이 오타케(Rui Otake)는 일본 전통 문화와 접촉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점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내 작품에는 특별히 일본 문화라든지 아니면 동양 문화적인 냄새가 배겨 나지 않는 게 바로 이런 어머니의 교육 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혼자서 일본문화에 대해 공부를 계속 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최근 들어 식당에서 일본 문화를 만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15년 전만 해도 썽 빠울로(São Paulo) 사람들이 날생선 고기를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 썽 빠울로(São Paulo)속의 아랍 패션

파우지 하텐(Fause Haten)


아랍계 후손인 패션 디자이너 파우지 하텐(Fause Haten)은 아랍 음식으로 유명한 키비(kibe)나 에스피야(esfiha)를 전혀 먹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랍계의 핏속에 흐르는 장사 수단을 물려 받아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와 사업가로 성공했다.

에지몬지 나임은 50년대에 브라질로 이민 와서 다른 아랍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쌍빠울로(São Paulo) 내륙 지방에서 잡화와 액세서리 등을 팔았다. 2년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브라질로 와 25 데 마르쏘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중 같은 레바논 이민자인 아티프 하텐을 알게 되어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2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중 한 명이 파우지(Fause)로 1년에 한 번씩 유럽을 여행을 해 왔었다.
16세 되던 해 파우지는 두 번째 여행을 하길 원했으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자 25 지 마르쏘 거리(R. 25 de Março)에서 원단을 구입해 할머니가 사용하던 재봉틀로 반바지와 셔츠를 만들어 팔기 시작해 여행 경비를 마련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전형적인 아랍 사람처럼 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고 “최근 들어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지만 아직도 25 지 마르쏘(R. 25 de Março) 거리는 썽 빠울로(São Paulo)에서 가장 아랍다운 지역”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현재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에 손꼽히는 파우지 하텐(Fause Haten)은 썽 빠울로(São Paulo)와 헤씨피(Recife)에 직영 매장 1개씩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 200개가 넘는 매장에서 그의 옷이 판매되고 있다.

밀란과 뉴욕의 패션 주간에 브라질 패션 디자이너로서 가장 먼저 초청을 받았으며 뉴욕에도 쇼 룸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 그가 제작하는 의류는 미국 전역을 비롯 중동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빠울리스따 대로(Av. Paulista)에 위치한 썽 루이스(São Luis) 고등학교를 80년대에 졸업한 그는 “최근에 건물을 수리한다며 옛날 건물을 모두 헐어 버린 다음부터는 모교에 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추억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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