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MBA


logo

 
banner1
친구를 찾아요. ( ㅈ ... 2022-04-05
네네치킨 2022-03-30
시황 2022-03-29
순위 닉네임 포인트
1위 lorenjo 49686점
2위 허나우도 25020점
3위 bonmario 21110점
4위 은행나무 20855점
5위 핵폭탄 16062점
6위 DAVIRHIE 10540점
7위 관리봇 9540점
8위 지아나 9085점
9위 한비 4835점
10위 uno 4805점

혼자 알기 아까운 여행지나 음식점을 공유해주세요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주말 포어 학교 제3차 수학여행기 -3편-

첨부 2




left계속해서 제2차 목적지인 Recife 와 Olinda 를 소개하고자 한다.

Recife 는 인구가 155만명이며, 주변 14도시를 합친 인구는 373만명가량 된다.(인구 대비 브라질 4번째 도시에 해당한다), Recife 의 인구중 백인들 대다수가 포르투갈 및 네덜란드의 후손들이다. 그 외에 백인과 흑인간의 혼혈종, 백인과 인디언과의 혼혈종들이 많다.  

Pernambuco 주 인근의 해안지역을 따라 엄청난 양의 산호가 줄지어 있어 산호의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썰물 때에 물이 빠지면서 해변에 바닷물이 산호에 고여 그곳에서 수영하는 기분은 천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지구상에 Pernambuco 주 와 호주에만 있는 절경이다. 바닷속 암초를 포어로 arrecife 라고 불렀는데, 이런 암초 같은 산호를 보고 Recife 란 지명이 유래되었다.

기후적으로는 연중 무더운 열대기후이며, 1월에 가장 기온이 높아 섭씨 30도 정도이며, 최저온도가 섭씨 25도 정도이다. 7월은 겨울에 해당하며, 최고온도는 섭씨 27도, 최저 온도는 섭씨 20도 정도이다. 7월에는 비가 많이 내리며, 연중 평균온도는 섭씨 25.2도에 이른다.

지역경제의 대부분은 상업 및 서비스, 관광업이 66.1% 에 이르며, 공업이 14.9% 로 그 다음이다.

Recife 는 Pernambuco 주의 수도이며, 브라질의 이탈리아 베니스라고도 하며, 동북부지방의 수도라고도 하며, Maurícia 도시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바다가 도시주변을 흐르는 것이 같이 Recife 도시도 Recife 섬, Santo Antônio 섬, Boa Vista 섬으로 부르는 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Beberibe 강과 Capibaribe 강이 3개의 섬사이를 흐르고, 합류하며 대서양으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이 Recife 시에는 Centro지역을 관통하는 바다와 강의 50개 이상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39개나 되는 다리가 있다.

다른 유럽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는 북미, 중미, 남미 3대 아메리카에 네덜란드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17세기초 이미 브라질을 침략하여 Ceará 주에서 Alagoas 주 남부지방의 São Francisco 강 하구까지 성곽을 세워 전략적인 군사요충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어 1630년에 사탕수수의 사업권을 빼앗고자 Pernambuco 행정구를 침략한다. 1637년에 Maurício de Nassau 백작이 네덜란드로부터 브라질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 받았다. 그래서 유럽에서 걸출한 건축가들, 토목기사들 및 조경사들과 함께 Recife 에 도착했다.

원래는 Olinda 가 Pernambuco 행정구의 수도로 더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네덜란드는 Olinda 에서 사탕수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포르투갈의 제당소 주인 같은 재력가들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몰락시킬 목적으로 큰 화재를 일으켜 Olinda 를 한순간에 황폐화시키면서 Olinda 의 화려함은 그 명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본국과 지리적인 유사함이 많은 Recife 를 선호하여 Recife 를 식민지의 수도로 삼았다. 그래서 그 후 Recife 를 Maurício 의 이름을 딴 Mauritsstad (포어로 Cidade Maurícia) 로 불리게 되었다.

Nassau 백작은 “새 네덜란드의 건설”이라는 기치아래 당시 혁명적인 도시개혁을 이끌었다.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도로망을 정비하였고, 여러 다리들이 건설되었다.

지역의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다리를 놓고, 둑을 세우고, 강 의 지류 및 주변 정비등을 통하여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때 브라질에 처음으로 다리가 건설되었고 Nassau 백작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과학과 예술의 찬미자였다.

그래서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브라질 식물류와 동물류, 제약 및 열대질병류들을 연구하도록 하고, 또한 브라질의 풍경과 지역의 원주민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화가들도 브라질로 불러들였다.

지금도 Frans Post 같은 네덜란드인 화가가 그린 당시의 회화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여 카톨릭과 칼빈 개신교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고, Recife에 유대인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1642년에 남미 첫 유대인 회당이 Recife 에 세워졌다.

그러나 1654년에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네덜란드인들이 축출되고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Recife 에 거주하던 대다수 유대인들이 미국 뉴욕으로 도피하게 되면서 뉴욕에 유대인사회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644년에 네덜란드의 서인도무역공사의 고위층간에 브라질 - 네덜란드간 무역이윤을 두고 다툼이 생겨 이 일로 Nassau 백작은 해고당하면서 네덜란드로 귀국하게 된다.

Recife 의 역사는 Pernambuco 행정구가 생기는 153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534년도에 본국 포르투갈에서 군인이며, 항해자로 유명한 Duarte Coelho Pereira 를 이 지역의 통치책임자로 임명한다.

Recife 의 기원은 Olinda 도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Pernambuco 의 행정구의 수도로 Olinda 가 지정되면서(1535년 3월 12일) 옆에 위치하여 작은 항구의 역할만 수행하던 Recife 의 존재가 급부상하게 되어 정확한 도시의 탄생 일자를 알 수 없으나 1537년 3월 12일로 역사가들은 기록한다.

브라질 식민지 14 행정구중에서 Pernambuco 행정구는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토질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어 다른 행정구보다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당시에 사탕수수에서 나온 흰색 설탕을 아메리카대륙에서는 “Ouro Branco”로 부를만큼 비싸게 간주되었다. 사탕수수를 통한 강력한 경제력은 그 당시 브라질 첫총독이었던 Tomé de Sousa 조차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 덕택에 수도였던 Olinda 는 도시를 화려하게 치장했고, 윤택한 생활은 당연히 16세기와 17세기에 활발한 항해를 통하여 상업과 해적역활과 침략을 일삼던 네덜란드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드디어 1630년도에 네덜란드는 범선 70척과 군인 7천명과 대포 200문을 앞세워 Olinda 북쪽에 위치한 Pau Amarelo 해안에 상륙하여 Pernambuco 행정구를 정복했고, 1630년부터 1654년까지 24년간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

1644년에 Nassau 총독이 네덜란드로 귀국하고, 서인도무역공사에서 제당소 주인들에게 부채상환을 독촉하면서 불만을 품은 유력한 제당소 주인들이 뭉쳐 포르투갈 정부의 승인없이 독자적으로 네덜란드 통치에 저항을 시작하게 되었다.

“Pernambuco 회복”이라고 불린 무력 저항운동이 1645년에 시작되어 1648년과 1649년에 Guararapes 언덕에서 두 번의 중요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1654년 1월 27일에 네덜란드인들을 그 지역에서 축출하게 되었다.

그 후 1661년 8월 6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간 협상을 통하여 네덜란드는 포르투갈로부터 8백만플로링을 받고, 브라질에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앞으로 브라질 침략하지 않겠다는 협상에 합의하게 되었다.

브라질에서 철수하면서 네덜란드는 Pernambuco 지역의 사탕수수 기술자와 시설 및 기술을 카리브해의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앤틸리스 제도로 가져가 사탕수수 대량생산을 시작하면서 Pernambuco 의 사탕수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네덜란드가 철수 후에, 본국 포르투갈에서 많은 상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여 Recife 에 정착하게 되면서 Recife 는 이들로 인해 점차 번성하게 된다. 이들의 번성은 Olinda 에서 예전 네덜란드 지배의 탄압 속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대다수의 제당소 주인들과 귀족들에게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사진1: 올린다 언덕에서 바다건너 헤시피 시가지가 보인다.  

사진2: 헤시피의 9km 보아 비아젱 해변도로. 에메랄드 바닷물 색깔이 경이롭다.



door.jpg

추천인 150

인선호 인선호
20 Lv. 37920/39690P

서프라이즈~~~~^^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댓글 쓰기

에디터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상호명 : 투데이닷컴(웹)/한인투데이(일간지) / 대표자 : 인선호 / E-Mail : hanintodaybr@gmail.com/webmaster@hanintoday.com.br
소재지 : R. Jose Paulino, 226번지 D동 401호 - 01120-000 - 봉헤찌로 - 상파울로 - 브라질 / 전화 : 55+(11)3331-3878/99721-7457
브라질투데이닷컴은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정식 등록사입니다. Copyright ⓒ 2003 - HANINTODA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