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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넘어 친나치 '안익태의 애국가' 이대로 둘 것인가

"친일 넘어 친나치 '안익태의 애국가' 이대로 둘 것인가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가 친일파이자 친나치였다는 사실을 밝혀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65)의 친일행적은 10여년 전부터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가 친일파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면 어떨까? -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산 소고기 투쟁, 영화 스크린쿼터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정치학자로서 개입해온 이해영(사진)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가 이번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안익태의 전력을 파고들었다.

이 교수가 최근에 출간한 <안익태 케이스-국가 상징에 대한 한 연구>(삼인)는 지난 8년 남짓 직접 발굴한 최신 자료들을 종합해 그동안 알려진 일본명 에키타이 안의 친일 행적만이 아니라 친나치 활동까지 고발하는 문제작이다. 지난 1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안익태 케이스-국가 상징 연구출간
8년간 독연방문서보관서 등 자료 수집
유일한 조선 출신 제국음악원 회원 등
2차 대전 2년반 나치독일 행적추적
유럽첩보 총책 에하라의 특수공작원

정부 나서 안익태 파일등 검증 필요
국회에서 새 국가 제정공론화 계획

194223일 열릴 나치 정권의 전쟁 부상자와 가족을 돕기 위한 자선 기금 연주회를 앞두고 안익태(오른쪽)가 지휘할 <일본 축전곡>에 대해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왼쪽)와 상의하는 모습. 촬영 일시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 베를린 연방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그 자신 안익태의 주 활동무대였던 독일에서 유학했고,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 애호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논쟁적 정치학자답게 안익태 문제에 대한 기존 음악계의 학문적 접근보다 주장이 선명하다.

안익태도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35년께 미국에서 애국가를 초연할 때만해도 우리 민족운동과 애국정신을 돕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안익태가 본격적으로 친일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였다. 1941년 독-소 전쟁이 벌어지자, 일제는 유럽지역 자국민 소개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대로 귀국하게 되면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오기까지 이룩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에 안익태는 베를린 주재 만주국 외교관으로 위장한 일본의 유럽 첩보망 총책이었던 에하라 고이치를 찾아가 상담을 요청한다.

그 덕분에 안익태는 1941~44년까지 만 2년 반 동안 에하라의 베를린 자택에 머물 수 있었다. 44년 히틀러의 생일 기념으로 파리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을 비롯해 그는 동맹국(독일·이탈리아 등)과 점령국(프랑스), 우방국(스페인)에서만 30차례의 공연을 지휘한다. 자신이 작곡한 <에텐라쿠>, <만주국 환상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일본 축전곡> 등도 연주했다. 특히 그는 나치독일에서 유일한 조선 출신 제국음악원 회원이 됐다. 그 회원증에서 그는 출생지를 평양이 아닌 도쿄로 속여서 적기도 했다. 이 교수는 안익태는 2차 대전이 발발한 이후엔 약한 민족주의 성향마저 탈색되면서 적극적인 친일로 전향했는데, 본래부터 음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출세욕이 강한 인물이었던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교수는 안익태가 지휘한 여러 공연이 -일협회의 주최와 기획으로 열렸다는 데 주목한다. 독일과 일본의 민간 친교·학술 교류단체였던 독-일협회는 나치의 제정 지원을 받는 당 외곽 조직이자 두 나라의 대외 선전도구 구실을 했다.

1941101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페스티 비가도 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에키타이 안(안익태)<에텐라쿠>를 지휘하고 있다. 삼인 제공

이런 점들을 종합했을 때, 이 교수는 안익태를 에하라의 특수공작원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안익태는 미리 일본의 첩보를 입수한 듯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 독일의 우방국이자 파시스트 프랑코가 집권하던 스페인으로 도주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기피 인물로 지정된 안익태는 파리는 물론 독일, 오스트리아 등으로는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이 또한 그의 친나치 활동을 방증한다.

그동안 직접 독일 연방문서보관서를 드나들며 안익태 파일등 자료를 복사해왔던 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추가로 기록과 자료를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안익태 행적 관련 사실관계가 70% 정도밖에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 정부에서 정식으로 독일 연방문서보관소에 있는 안익태 파일을 복사해오고, 영상 자료도 사본을 확보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자료가 있는지도 조회를 요청하는 등 정부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표적인 프랑스의 나치 부역 신문인 <르 마탕> 1944419일치에 실린 사진. 전날 파리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에서 에키타이 안(오른쪽)은 유명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왼쪽)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을 협연했다. 삼인 제공

안익태의 애국가가 관행상 국가로 불려왔지만, 현재 법적으로 지정된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없다. 그래서 1960~70년대에도 새로운 애국가를 제정하자는 운동이 있었고, 전두환 정권 때에도 국가 제정 위원회를 구성해 애국가의 가사와 감상적인 곡조의 문제점을 들어 새 국가를 만들려고 했었다. ,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문제는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필요성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60년 넘게 안익태의 유럽 행적이 은폐된 상황에서 그나마 친일 문제가 터진 것도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지금도 서점에선 여러 종의 안익태 위인전이 유통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 나치 부역만으로도 프랑스에서는 사형감이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영국, 미국 등에서도 비열한 부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부르는 상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교수는 새로운 국가제정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해 공론화해볼 계획이다. 국가는 가장 중요한 나라의 상징체계 가운데 하나로, 집단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핵심적인 제의적 절차다. 그런데 비애국적인 국가를 부르고 있다는 이런 문제를 과연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애국가같은 기본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이제는 답변해야 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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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1등 까리오까 2019.01.14. 21:18

친북좌파 교수 이혜영의 우리나라 애국가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를 규탄한다. 이 혜영은 골수 친북 좌파 교수로, 한미 FTA,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소동에 앞장 서왔던 인물이다. 스크린 쿼터제에도 격열히 반다하면서, 미국 영화를 들여오면 우리나라 영화는 다 망한다고 선동하던자이다. 그의 주장이 전부 허위였음은 결과가 웅변적으로 증명해 주고있다.

한물간 타령이 이제는 약발이 떨어지자, 지금은  안익태 선생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의 주장은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hearsay(傳聞證據)(fofoca)  뿐이다. 전문 증거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가 반대 심문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면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 보자.

1.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 독일 주재 외교관인 "에하라 고이치" 가 유럽 첩보 총책이란 증거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안익태 선생이 그사람을 찾아가 만났다는 증거는? 더욱더 말도 안되는것은 안 익태 선생이 고이치 집에 거주 했다는 거짓말이다. 이 모든것은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하는 의심 뿐이다. 왈(曰), 대한민국 대학 교수란 자가,  자기 상상력을 동원해서 민족의 저명 인사를 이런식으로 매도해도 된다는 말인가? 친북 좌파는 "방법이 결과를 정당화한다" 고 믿는 부류들이나까, 그렇다고 치자.

2.나치 하에서 예술 활동 한것이 어떻게 나치 협력자이고< 독일-일본 협회에서 음악 지휘 하면 다 친일이고, 친 나치인가? 그러면 일제하에서 조선에 남아서, 예술 활동 한 사람은 다 친일파인가? 일제하에서 창씨개명하고, 공출(세금) 을 내고, 매일 같이 학교 시작하기전에 " 황국 신민 선서"를 외우고 "신사"( 神社) 에 가서 절한 3 천만 우리 동포는 전부 친일 파인가? 그렇게 말하면 이교수, 부모, 조부는 "독립운동" 만 하던 집안 자손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 아버지가 일제하에 법원 말단 직원을 했다고 친일파 자손이라고 핏대를 올리던 사람들 얼굴이 생각난다.

3. 친일파로 몰려고 안익태 선생을 억지로 일본식 발음인 "에끼따이 안" 이라고 부른다. 이건 IKTAE AHN 을 스페인 식으로 읽을때 생기는 발음이다. 우리가 쓰는 폴투갈어  발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전쟁중에도 적군의 부상병을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의무다. 음악가가 "자선 음악회" 에서 연주 한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친선 협회"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지휘 하면 다 그 정치에 동조 하는 사람 이란 말인가?

4. 독일 음악가 Rihart Strauss 는 안 익태 선생의 은사다.Strauss 선생도 나치에 동조 하지 않았느냐 해서 종전후 말썽이 있었지만 유태인 극작가 Stefan Zweig 를 도와 준것이 증명되어서 혐의를 벘었다.

5.일본 신화를 각색한 "에텐라쿠"를 안 익태 선생이 작곡하고 연주를 지휘 했다고 하지만 그 증거인 악보가 없고 차라리 안익테 선생이 "신라향가" 에서 모티브를 찾은 "강천성약" 만 아직까지 전한다 ( 금년 월간 조선 1월호 참조)  

6. 더욱더 기가 막힌 이 교수의 거짓말은 " 안 선생이 미국이 놀만디 상륙 작전을 할 계획" 이란 것을 일본이 안 선생에게 알려줘서 스페인으로 피신하게 했다는 말이다. 히틀러도 몰랐던 놀만디 상륙 작전을 일본이 어떻게 알았으며, 안익테 선생이 뭐라고 그런 중대 기밀을 알려 주느냐 하는 말이다. 거짓말도 이정도면 노벨상 감이다

 이상으로 이 혜영 교수의 안익태 선생 친일 논쟁은 인기가 곤두박친 친북좌파 교수의 noisy marketing 의 일환임을 알리는 바이다.

1962년 안익태 선생이 오랫간만에 귀국 했을 때 ( 난 당시 브라질에 있었음) 일부 음악인이 국가에서 자기들에게 안주고 안 선생에게만  예산을 책정해 줬다고, 친일 논란을 일으키고 애국가가 불가리아의 민요를 표절했다고 소란을 피웠다는것을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됐다. 사계 권위있는 음악가들이 면밀히 검토한바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하고 안선생에게 문화 대훈장을 수여했다. 반세기도 지나서 좌파 교수가 다시 논란을 부활시켰다. 그 이유는 애국가를 부정 함으로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부정할려는 친북 좌파들의 운동의 일환인것이다.

일제 35 년을 가지고 아직도 친일파 어쩌구 국민을 갈라 놓는것을보면서, 우리는 월남에게 배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월남은 프랑스에 100  여년 식민 지배를 받았고, 미국, 한국군에 많은 월남 사람이 희생 되었어도 그걸가지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고 있다. 월남도 우리나라처럼 유교권으로 한문을 쓰고 있었는데 프랑스 신부가 로마자로 활용한 문자를 만들어 줘서 아직까지 잘 쓰고 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가? 보나마나  문자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야단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명분만 따지고 공 이론만 가지고 왈가불가 하면서 나라를 망하게 할게 아니라 월남 같은 나라에서 여러가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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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jo 작성자 2019.01.14. 21:54
까리오까

옳고 그른것은 음악계 사학자들에 의해 언제고 밝혀지리라 믿습니다.우리가 미리

집고 넘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또한 한국인의 유전적인 고질병인 극단적인 해석과

판단도 심히 유감 스러울 뿐이다.


민족을 위해 자진해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씨와, 그당시 나라없이 외지에서

자신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일제에 협력치 않을수 없었든  안익태. 그를 평가하

위해서는 그의 공과가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사가로 유력시되는 윤치호는 독립협회 회장과 독립신문 사장을 지냈으나 친일파

로 돌아섰다. 애국가를 작사한 사람이 윤치호라면 애국가의 작곡가와 작사가 모두가

친일 논란에 휩싸이는 것이 된다. 우리는 언제나 친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시대 지도층 거의 상당수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국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여러 독립운동가의 삶에 견주어볼 때 그들의 삶은 또한편

실망스럽고 또 안타깝다.


댓글
2등 까리오까 2019.01.14. 23:30

lorenzo 선생님:

 

극단적인 해석과 판단은 이 혜영 교수와 그 글을 깊은 생각 없이 브라질 동포에게 전한 선생님 자신 입니다. 글을 쓴 사람 뿐만 아니라 전파한 사람도 법률적으로 똑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안익태 선생이 친일을 할수 없이 (?) 했다는 전제로 말씀 하는것 같습니다. 안익태 선생에 관한 문제는 오늘 어제 일이 아니고 벌써 반세기가 지나도록 많은 사람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입니다.

결론은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음악가 , 로마 법 시대부터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IN DUVIDA, PRO REU.  " 의심이 날때는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판결해야 한다" 는 명언이지요. 그러면 안 선생 일도 이만 놔 드릴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사학자가 언젠가 밝힐거라고 말씀 하시는데, 이미 밝힐것은 다 밝혔습니다.  이 혜영 교수는 출신이 골수 친북 좌파 교수로 ( 그간의 그의 행적이 이를 증명 합니다) 이 글도 좌파 신문인 "한겨레 신문사" 에서 인터뷰 한것입니다.

이 교수가 비겁한것은 다 지나간 일을 현 대한민국 정부가 좌파로 기울어 지니까, 이 기회에 자기 능력이 못미치는것을 정부가 나서서 조사해 주기를 바라는 태도 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보세요.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발에 불등이 떨어져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정부 보고  자기 대신 일해 달라고 하는것이 학자 적인 태도 입니까?  확실하지 않으것을 가지고 확정적인것 처럼 여론을 호도 하는것이 지성인이 할 짓입니까?  lorenzo 선생님, 선생님의 위의 글에서 2 가지만 지적 하지요.


1. 애국가 작사자가 누구 인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윤치호씨 일 가능성이 많다 하는 정도 입니다. 윤치호씨의 조카가 1963년에 브라질에 이민 와서 살었던 것을 아십니까? 저는 친하게 지내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lorenzo 선생님 보다는 이 문제에 조금더 알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2. 친일 인명 사전을 만든 "민족 문제 연구소" 가 친북 좌파들이 만든 기관 인것을 아십니까? 그 사전을 만든 주요 이유는 대한 민국의 정통성을 부인 할려는 목적이지만, 그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보수 언론 인들을 친일파로 몰려는 목적 하에서 만든 것입니다. 친일파 사전에 김일성의 동생 "김 영주" 가 만주에서 일본 헌병대 통역관 내지 밀정이었던 사실은 왜 빼 놨습니까? 그외 여러 이북 초대 정부 인사중의 친일파 행적이 있었던 사람 들 이름도 뺐지요.


 지금 우리 나라는 친북 좌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문화계 특히 영화는 "태극기 날리며, 실미도, 동박골..최근에는 국가 부도 .등등 끝도 없이 좌파 들이 확대 생산 하고 있습니다. 교육계는 "전 교조", 대학 교수 협회, 종교계는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 불교, 법률계는 "민변", 지금은 정치계는 물론 군, 경찰에 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백주에 " 김정은 환영" 등의 구호를 서울 한 복판에서 대학생들이 외쳐도 아무도 잡아 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게 정상일가요? 이런 물을 우리 브라질 동포 들에게 까지 뿌릴수는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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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jo 작성자 2019.01.14. 23:56
까리오까

까리오까 선생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 눈을감고 생각에 잠김니다.세상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뚜렸이 한민족 사이에서 좌파니 우파니 이얼마나 슬픈일인지

몸서리가 치며 얼마남지 않은 인생에 그지없이 슬픈일이나 언젠가 진실은 밝혀 지리

굳게 믿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리 바보가 아닙니다. 진실은 꼭 밝혀지리라 믿습니다.진실은 시일

걸릴뿐이지 언제가 정당히 심판대에 오릅니다.

선생님님의 촘촘히 쓰신 댓글의 그열정에 존경의 찬사를 보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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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사랑 2019.01.16. 15:25
lorenjo

그것이 도도하게 강물처럼 흐르는 역사의흐름이 아닐까요.맟습니다

시일이 걸릴뿐이지 언젠가는 진실은 밝혀지게 돼어있읍니다.

요즘은 종북좌파라는 낱말을 접할때 웃음이나옵니다

대대손손 몇백년이 지나도 북한과 원수로 지내자는거....허 허 허


36년간 우리를 괴롭혔던 일본은 받아들이고

다시 또 일본과 합친다고 세상이 미처돌아가네 그랴.





댓글
그럼에도 2019.01.17. 00:26
야구사랑

종북좌파의 반대는 친일우파...???

좌파(평민)..우파(귀족),이니 

계급사회로 희귀하자는 뜻입니다..

달리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는 

건강한 의회민주주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순적으로 우파들은 우파라 말하지 않고

자기들은 보수세력이라하고 반대세력들을 좌파세력이라 폄하하지요

근데 현 한국의 의회정치는 

참 보수와 거짓보수로 새롭게 판이 짜여졌습니다

병든 의회민주주의지요....핫 핫 핫..!!!

댓글
3등 그럼에도 2019.01.15. 00:09

애국가는 안익태곡 코리아 환상곡에 나오는 4부 (독립의 쟁취) 합창곡으로

해방이후 붙혀진 가사입니다..

이전에는 작가미상의 현 가사에 올드랭 사인곡을 붙혀사용했더랬지요

유명한 일화로는 일본 공연에서 일본의 극구 반대에도 한국말 가사를 부르게합니다..

즉, 애국가지요...핫 핫 핫...!!

또한 서울대학 음대교수로 있을 때 교수 중 친일 학자들이 다수 포진됨을 알고 

그들과의 불화로 학교를 떠나게됩니다..

문제는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 버젓이 동해를 일본해로 명시된 지도를 사용하니 가사를

일본해와 백두산이... 바뀌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ㅋㅋㅋ

http://fun.pullbbang.com/fun/jpostView.pull?category2_code=1&code=16813028

동아일보및 조선일보 동해를 일본해 표기

한국 환상곡 Korea Fantasy 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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