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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잠입해 책 쓴 한국계 미국인 작가


●“북한은 의문 용납하지 않는 근본주의 종교와 똑같아”
수키 킴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석방된 미국인 청년 오토 웜비어(1995년생)가 미국으로 송환된 지 엿새만인 2017년 6월 19일 사망했다. 웜비어는 2016년 1월 1일 양강도국제호텔에서 정치 슬로건이 적힌 선전물을 가지고 나갔다가 이튿날 평양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북한 당국은 체포 두 달 후 그에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해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2018년 12월 24일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웜비어의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5억113만 달러(5천643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수키 킴은 북한에 잠입해 책을 쓴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런던대학원에서 동양문학을 공부했다. 2003년 첫 장편소설 ‘통역사(The Interpreter)’를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펜 경계문학상과 구스타브 마이어 우수도서상을 수상했다. 미국 최대 서점 체인 반즈앤노블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그가 2014년 출간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Without You, There Is No Us)’는 평양과학기술대에서 6개월간 영어를 가르치면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북한 노래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의 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 2015년 1월 출간된 한국어판 제목은 ‘평양의 영어선생님’. 북한이라는 국가를 근본주의 종교에 빗대 서술한 수작이다.  

잠입 저널리즘으로 北 들여다봐

오토 웜비어는 2017년 6월 13일 북한 억류 17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고향인 미국 신시내티에 돌아왔다.


“사이비 종말론에 빠진 듯한 북한에 관한 이 책의 내용은 추측이 아니다. 이해불가능한 땅의 일상에 대한 씁쓸하지만 보기 드문 관찰기다”(월스트리트 저널) “등골이 오싹하다. 그곳은 악이 일상인 곳, 완전히 독단적인 곳이라는 점을 이 책이 상기시켜준다”(뉴욕타임스) “개인의 역사가 고립된 나라의 속을 드러내 보여주며 읽는 이를 몸서리치게 한다”(보그)는 상찬(賞讚)이 따라붙었다.   

수키 킴과 웜비어 사건, 억류자 문제, 북한 관광, 대북 정책, 북한 체제의 본질을 주제로 대화했다.  

“정치의 도구로 두 번 죽여”

“웜비어 사건은 오랫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이들에겐 놀랍지 않은 일입니다. 북한 당국이라는 게 그만큼 무자비해요. 북한 권력 집단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웜비어가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포스터를 실제로 훔쳤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웜비어가 혼수상태에 빠졌는데도 미국에 알리지 않은 것도 비인도적인 일이고요.”

그는 웜비어 사건 이면(裏面)의 정치적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웜비어 케이스는 비인도적 행위면서 정치적 사건입니다. 22세에 불과한 아직 어린 청년이 죽었습니다. 웜비어는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정치가 어떤 것인지 몰랐을 겁니다. 북한이 신성하게 여기는 선전물을 뗀 게 큰 죄가 되는지는 평양과 외부의 견해가 다를 수 있으나 혼수상태에 빠진 어린 청년을 사망하기 직전까지 억류한 것은 북한 당국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다시금 일깨워줬습니다. 북한 당국이 외국인을 인질로 삼아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평양을 지켜봐온 이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만 한국과 미국의 반응에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웜비어에게 일어난 일은 전적으로 치욕적인 일이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됐다”면서 “지난 정부가 했던 일? 그 결과가 이것 아니냐”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넘겼다. 

“트럼프는 오바마 때는 못 데려왔는데 우리는 데려왔다는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웜비어 사건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 겁니다. 목숨은 부지했으나 사실상 시체가 돼 돌아왔는데, 이 사건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어요.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발생한 이 사건이 포용정책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 6명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었고요.”   

북한은 억류된 한국인 6명이 ‘국가정보원의 첩자’라고 주장한다.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비법국경출입죄’ ‘파괴암해죄’ 등을 적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0일 웜비어 가족에게 조의와 위로의 내용을 담은 조전을 발송했으며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는 견해를 표명했으나 송환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웜비어는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에 들어간 게 아닙니다. 평양에서 뭔가를 도모한 것도 아니고요. 아직 어린 대학생이 호기심에 평양에 간 것이죠. 북한 정권의 본질을 잘 몰랐다는 무지함이 있었으나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죠. 북한이라는 무지막지한 나라에 들어가 한 번 죽었는데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면서 두 번 죽었다는 게 슬픕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한국의 태도가 굉장히 나빠요. 한국에 살지 않기에 자유롭게 비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햇볕정책이 이뤄질 때 북한 인권 이슈를 절대 밖으로 내비치질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북한은 정치적 이슈이기에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인권 문제는 방관합니다. 북한 인권을 테이블에 올리면 정치적으로 불편하니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도 국민이라고 여기는지는 제쳐놓더라도 한국 국적을 가진 이가 북한에 6명이나 억류돼 있습니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정부의 의무예요. 1명이든, 6명이든 자국민이 억류됐다면 구해내야죠. 진보든, 보수든 국민을 돌보는 게 먼저여야 해요.”  

나치 문양 닮은 北 선전물

수키 킴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다음 주에 한국 대통령 문재인이 트럼프를 만나고자 워싱턴을 방문한다.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기에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는 올해가 가기 전에 김정은과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그는 북한에 억류된, 적어도 6명의 그의 국민이 처한 곤경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또한 6·25전쟁 이래 북한으로 납치되거나 실종된 국민에 대한 언급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한 당국이 한 번, 한국과 미국이 또 한 번 웜비어를 죽였다”고 했다. 웜비어가 훔치려고 했다는 북한 체제 선전물을 나치 문양인 스와스티카(Swastika)에 빗대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북한은 온 나라가 선전물입니다. ‘단숨에’라는 제목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모든 학생이 부르고, 어딜 가도 들립니다. 노래뿐 아니라 사방에 ‘단숨에’라는 구호가 적혔습니다. 학생들에게 ‘단숨에’가 뭐냐고 물었더니 ‘단숨에 다 죽여버린다’는 뜻이라더군요. 22세 대학생이 정치 선전 포스터를 뗐다고 어떻게 15년간 탄광에 보낼 수 있느냐는 게 미국인의 대체적 시각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정치 선전물은 그냥 포스터가 아니에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장군님’과 관련된 선전물은 나치의 스와스티카와 비슷합니다. 나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스와스티카는 표지의 하나이겠으나 그것이 아돌프 히틀러의 상징인 것처럼 ‘장군님들’을 찬양하는 포스터가 북한에서 가진 의미는 대단합니다. 웜비어가 포스터를 뗀 후 훔치려다 체포됐다면 북한이라는 세계에서는 죄를 저지른 겁니다.”  

“북한 관광은 Torture Porn”

2011년 가을 수키 킴이 평양의 한 야외식당에서 중국제 인스턴트 라면을 먹고 있다.


그는 평양의 정치 선전물은 북한 주민의 피를 빨아먹는 체제를 압축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 사람들도 ‘코리안’이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눌려온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의 상징이 북한의 정치 선전물입니다. 외국인의 눈에는 그냥 포스터, 기념품으로 인식되겠으나 한국 국민의 피가 포스터에 흐르는 겁니다.”

그는 웜비어 사건을 계기로 평범한 미국인도 북한이라는 나라가 가진 위험을 알았다고도 했다. 

“미국 사회가 흥미로운 게 사람들이 특권 의식을 가졌습니다. 미국이 가진 특권을 당연시해요. 중국 사람들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은 웜비어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이 포스터 하나를 뜯었다고 어떻게 15년간 탄광에 보낼 수 있느냐면서 기막혀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한테는 일어나도 미국 사람한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감히 어떻게 미국인에게…’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지식인들의 생각도 비슷해요. 특권층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한국의 재벌도 비슷하죠. 웜비어 사건을 통해 미국인들이 김정은과 핵무기만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을 안 겁니다. ‘북한이 정말로 무섭구나’ 하고 느낀 거죠.” 

그는 북한 관광은 윤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행동이라면서 ‘고통을 겪거나 들여다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행위(Torture Porn)’라고 지적했다.   

“투어리즘(tourism)은 오락(hobby)입니다.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예요. 잘사는 나라 국민이 놀러 다니는 게 관광이죠. 배고플 때는 할 수 없으며 먹고살 만해야 할 수 있는 오락입니다. 북한은 유엔에서 지정한 인권 유린 국가입니다. 북한 같은 나라에 투어리즘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고문과 같은 것(Torture)’을 즐기러 가는 행위라고밖에는 이해가 안 됩니다. 남의 고통을 들여다보려 특정한 장소에 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말이 안 됩니다.” 

그는 북한 관광을 히틀러 치하 나치의 아우슈비츠를 하이킹하는 것에 비유했다.  

“국가를 가장한 강제수용소”

수키 킴은 2015년 3월 TED 강연에서 “평양에서 본 것은 암흑(darkness)뿐이지만 내 제자들이 사는 곳이니 미워할 순 없다. 내 사랑스러운 젊은 신사들이 언젠가 그곳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북한 정권에 의해 통제되는 평양 관광은 겉으로는 안전해 보이지만 위험은 숨어 있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언제든 인질이 될 수 있습니다. 체제의 인질로 2500만 명을 붙잡아놓은, 국가를 가장한 강제수용소를 거닐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도대체 뭘까요. 인간으로서 어떻게 고통을 돈을 주고 즐깁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의 충족이겠으나 북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일생입니다.” 

그는 한국인이 해외의 북한식당을 찾는 것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식당에 왜 가는 걸까요.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 아닌가요. 북한 관광과 똑같지는 않지만 북한식당에 가는 것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이 20대잖아요. 북한에서 좋은 집안 딸들이라던데 외화벌이 나와 술 따르고, 웃음 팔고, 노래합니다. 노래방 도우미 수준으로 남성을 접대하고요. 우리의 딸들이 돈 뿌리는 한국 남자, 중국 남자 비위 맞추는 게 비참하지도 않습니까.” 

그가 가진 금강산 관광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금강산은 실제의 북한이 아니죠. 개성공단, 나진특구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고자 이용하는 도구의 하나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곳이고요. 금강산 관광 대가로 지불하는 돈의 많은 부분이 북한 당국으로 흘러들어가지만 그중 일부라도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인다면 인도적 차원에서 의미는 있지요. 평양에 놀러 간다? 그것은 말이 안 되지만 금강산은 한국 사람들에게 향수(nostalgia)를 자아내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강산 관광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말로 콩고물이라고 하나요? 관광 대가로 지불한 돈의 작은 일부라도 주민에게 돌아가므로 그나마 의미가 있습니다만 금강산 관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한국의 이산가족이 죽기 전 북한 땅을 밟는다는 측면도 있으므로 ‘그나마’라는 표현이 금강산 관광에 딱 어울립니다. 개성공단도 비슷해요. 그곳에서 진짜 협력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나마….”

어항 속에서 사는 삶

외국인이 평양에서 사는 것은 어항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에는 한국계 뉴질랜드인 여교수가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하는 방법을 가르치려다 실패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어만 배우면 되니 서양 식사법은 필요 없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북한에서 엘리트인 평양과기대 학생들조차 ‘세계 모든 사람이 조선말을 한다’고 믿거나 북한 내부의 폐쇄적 네트워크인 ‘인트라넷’을 인터넷으로 이해한다. 북한의 대학생들은 에세이도 쓸 줄 몰랐다. 장군님의 업적을 찬양하는 것이 써본 글의 전부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에 묘사된 북한은 이렇듯 세계의 흐름과 단절된 갈라파고스다.  

“북한이 변할까요? 어떻게 변하겠어요.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북한은 변하지 않습니다. ‘장군님의 체제’는 단 하나의 의문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이 주민의 삶을 100% 좌우하는데 대북정책을 통해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가요. 각급 학교에서 사상을 학습하고 생활총화(북한 주민들이 근로단체나 학교 등 조직에서 각자의 업무와 생활을 반성하고 상호 비판하는 모임. 북한은 생활총화를 통해 주민들에게 사상을 주입시킨다)가 주민의 삶을 규정합니다. 미디어도 체제가 좌지우지하고요. 완벽한 것을 원하는 근본주의 종교와 똑같아요. 햇볕정책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우리의 잣대로 들여다봐선 안 돼요. 국민, 정치, 사회가 있는 게 아니라 체제만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Without You, There Is No Us)’ 한국어판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인터넷도, 스티브 잡스도 몰랐다. 나는 일부러 ‘맥북’(애플에서 나온 노트북컴퓨터)을 펴놓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감시를 받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학생들이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에 호기심을 참았다고 봐야 한다. 알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사정을 이해할수록 안쓰럽고, 로봇처럼 행동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슬펐다.”(동아일보 2015년 1월 23일자 참조) 

“캠퍼스로 위장된 감옥”

‘평양의 영어선생님’은 잠입 저널리즘의 진실 추구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저술이다. 엘리트 계층의 자녀들에게조차 스며들어 있는 체제의 억압에서 기인한 불안이 책을 관통한다. 

‘우리는 늘 서로를 의심했다. 경계선 주위로 끊임없이 돌면서 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진이 빠졌다. 우리는 서로에 관해 알고 싶었지만 그런 정보를 우연히 발견하면 모두 얼어붙었다.’(‘평양의 영어선생님’ 95쪽) 

교사와 학생들은 스스로 검열하며 대화를 나눴다. 금기시되는 내용을 내뱉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넘어서서는 안 되는 선을 지키고자 거짓말로 서로가 장벽을 쌓았다. 학생들이 ‘평양이란 도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2015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린 TED 강연에서 뒤늦게 답했다.  

“아이들아. 평양은 전혀 아름답지 않단다. 북한의 다른 모든 지역을 먹어치우는 괴물 같아. 더구나 군인과 노예밖에 없어 아름답지 않구나.”  

그는 평양이 언젠가 아름다운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대화 말미에 평양에서 살 때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평양 생활이요? 굉장히 무서웠어요. 북한에 잠입해 글을 쓴 케이스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곳에서 그들이 허용하지 않은 행위를 했죠.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무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의 프롤로그(prologue)는 아프다.  

‘그곳의 시간은 다르게 지나가는 듯했다.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으면 하루하루가 그 이전의 하루와 똑같다. 이런 동일성은 영혼을 갉아버려 인간을 해에 맞춰 깨어나고 어둠의 시작과 함께 잠이 드는, 단지 숨 쉬고 일하고 소비나 하는 사물쯤으로 만들어버린다. 공허감은 느릿느릿한 하루와 함께 더 깊어져 가고 자신은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고 하찮아지게 된다. 그것이 내가 때대로 느꼈던 것이다.  

계속 제자리를 도는 작은 벌레처럼. 그 냉혹한 진공 속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소식도 들어오거나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없었다. 정권이 미리 규정해놓지 않은 어떤 e메일도, 편지도, 사상도. 교사로 위장한 서른 명의 선교사들과 270명의 북한 남학생들, 그리고 교사로 위장한, 선교사로 위장한 작가인 나, 텅 빈 평양 교외에서 밤낮으로 철저히 감시되는 캠퍼스로 위장된 감옥에 갇힌 우리에게는 서로들뿐이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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