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프디 슬픈 한편의 이민사
- lore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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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한 가족의 비사를 올리겠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에 딸하나 누가보아도 부러운 인테리 가정으로 가장 Q씨는 의대출신
으로 지금 살아계시면 아마도 82세 정도 부인도 외모가 고운 남 부러울데 없는 단출
한 가정이였지요. 브라질에 오자마자 곧 용케 영주권은 취득하였고 남은일은 가장인
Q선생의 브라질 의사면허를 따는 과제 이였습니다. 부인은 열심히 그당시 누구나
하는 옷장수 "벤데"를 하며 수완이 좋와 충분히 가족을 부양할수 있었고 돈이 좀
벌리자 Fusca 한대를 사서 멀리 지방 장사까지하며 정말 열심히 장사를 하셔 남편
의 뒷바라지를 했답니다.
그당시 Q 씨는 낮에는 소생집에 와서 포어공부 지도를 받고 좋은 친구로 이야기의
꽃을 피우곤 하였지요. 부인되시는 분이 장사도 잘되니 좋은 옷에 좀 예쁘게 치장도
하고나가니 Q씨는 자격지심에 슬슬 의처증이 생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부싸움이
없는날이 없을 정도로 저역시여러번 끌려가 화합을 도모 했으나 막무가내, 莫無可奈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마천가지로 부인께서 Fusca 에 상품을 가득싫고 "Ribeirao
Preto"쪽으로 가시든중 고속도로에서 불의의 자동차 충돌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답
니다.정말 허무한 인생이였습니다. Q 선생 울며불며 통곡했으나 지나간 세월은 돌아
오지 않는것, 실신한듯한 그는 짐을 꾸려 먹구룸 같은불운의 상빠울로를 뒤로하고
머나먼 "고이아니아" 로 멀리 떠나 어린 자식둘을 데리고 그곳 대학에서 의사면허를
취득, 쓰디쓴 눈물자욱이 진 상빠울로와 멀리 등지고 깊은 산골의 Rio Verde 란 작디
작은 도시의 카톨릭 병원에 근무하며 아주 가끔 한두번의 서신이나 전화로 소식을 알
정도이였으며 10여년후 갑작스러운 그분의 방분을 받고 몇시간동안 지난 흘러간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때그분의 말씀이 아무래도 그병원 수녀간호원 이태
리 여자와 결혼할것 같다는 어섬프리한 이야기를 남겨놓고 갔습니다.
그러부터 20여년후 풍문에 산속의 외진 도시 그병원에서 결국 이태리 수녀와 결혼하
고 사시다 병환으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셨다 합니다. 타계하신 두분, 저세상에서는
좋은 부부로 두분 영혼이 이세상에서 못다한 한을 푸시고 평안 하시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봅니다.
많은 이민역사에 숨겨진 놀라운 비사가 있으나 아직도 글로 옮기면 그분들에 피해가
있을 우려로 우선 한가지 지난 역사의 한 폐이지만를 둘처 보고 넘깁니다.
<그대의 안부가 듣고 싶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라 하며
안개속 으로 사라진 그대의 모습
이젠, 많은 세월속에 묻어 버렸지만
혹시나 흘러가는 소식 이라도 듣고 싶어
실 오라기 만한 희망을 걸고 어디서 엔가
주름진 얼굴로 그대도 나를 생각 하리라 하며
가슴을 조여 본다. 아! 그대의 안부가 듣고 싶다.
2018년 5월 14일, 유리 할아버지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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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유리 할아버님:
저도 그 부부를 잘 앏니다. 서울 의대를 나오셨고 고향이 함경도였지요.
부인이 돌아가신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마침 미국으로 출장가던 저와 같이 탔읍니다.
부인에게 잘못한것이 후회 막심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다 늦었지요.
그후 브라질로 다시 돌아 왔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만 제가 미국으로 공부 가는 바람에 소식이 단절됐습니다,
슬픈 이야기를 하시니 제가 웃기는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반공 포로로 오신 고 이봉엽씨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상,파울로 Avenida Sao Joao 초 입에 Leao 이라는 반지하 큰 식당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1958년경)거기서 식당 보이로 취직해서 일하는데 경험 부족으로 macarao 을 가지고 가다가 넘어지면서 귀부인 가슴에 국수를 쏟아 버렸습니다. 급한 김에 손으로 국수를 막 꺼내는데, 자기부인 가슴을 만지는 동양인을 보고 남편이 강 펀치를
날려서 기절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까리오까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마도 잘못 착각하셧습니다. 그분은 현 고려대 의대전신 옛"수도의대"
출신이고 부인사망후 한국에 나가지 않고 즉시 "Goiania"로 간분입니다.
어제밤에 그글을 쓰고 한참 잠들기가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허망하고
슬픈일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