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마지막 司試 수석… 12번 떨어진 그녀, 주인공이 되다

by anonymous posted Nov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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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시작한 사법시험이 올해를 끝으로 폐지됐다. 지난 7일 합격자 55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사법시험 마지막 수석은 단국대 법대 출신 이혜경(여·37)씨가 차지했다. 13년간 1·2차 시험 포함, 12번의 실패 끝에 얻은 영광이다.


지난 9일 이씨의 서울 '신림동 고시촌' 원룸 방 한쪽 벽은 손으로 '합격'이라고 쓴 A4 용지로 도배돼 있었다. 천장에도 이 문구를 붙여놓고 잠들기 전까지 봤다고 했다.


이씨는 "내 키보다 높이 쌓여 있었던 고시 책들과 어제 작별했다. 마음이 이보다 더 홀가분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최고 득점으로 합격했다'는 법무부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과 두 살 터울 여동생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거짓말 같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학창 시절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고 성적도, 성격도 평범했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법전을 잡고 있던 주변 선후배를 따라 자연스레 사법시험을 생각했다. "법조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멋지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신림동에 들어온 건 지난 2004년 봄. 매년 선발 인원이 1000명에 달하고, 한 해 응시자가 2만명에 육박했던 사법시험 전성기였다. 경험 삼아 치른 시험에선 연거푸 1차에서 미끄러졌다.


이씨가 처음 시험을 본 건 2005년. 이후 작년까지 1·2차 합쳐 총 12번의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수험 기간이 길어지고 초조함이 더해갔다.


서른 살이 넘자 주위에선 다른 공무원 시험이나 로스쿨 진학을 권했다. 매달 100만원 가까이 소요되는 생활비도 문제였다. 모교인 단국대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가족의 도움이 필요했다. 부모님께 선뜻 전화할 수 없었다. 빨리 합격하지 못하는 것이 불효처럼 느껴졌다. 결혼할 생각도 못 했다.


이씨는 "신림동 고시촌을 떠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미련"이라고 했다. 매번 한두 문제 차이로 낙방했다.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진로도 고민했지만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법 공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조셉 마셜의 '그래도 계속 가라(keep going)'란 책 제목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 15시간, 300페이지씩 읽고 공부했다. 그런 일과를 거르지 않았다. 가끔 가수 거북이의 노래 '빙고'를 듣고 인근 도림천을 산책하며 머리를 식혔다. 최고의 일탈(逸脫)은 신림역 쇼핑몰 구경. 그마저도 배짱이 부족해 뭘 사진 못했다. 이씨는 "그땐 '시험에 합격하면 꼭 다시 사러 와야지' 하고 눈에만 담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번 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엔 186명이 응시했다. 합격자 55명 중 30대 이상이 46명(83.6%), 평균 연령이 33.4세로 2002년 법무부가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높았다. 이씨는 "모두가 치열한 고민 끝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뛰어든 사람들"이라며 "고시 낭인(浪人)이란 말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씨는 신림동 고시촌의 쇠락을 함께 겪었다. 시험 정보를 귀동냥하던 서점이나 헌책방들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다. 점심때면 고시촌 식당에서 들리던 학생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이씨는 당분간은 고시촌에 머물며 13년의 생활을 갈무리할 생각이다. "내가 왜 이 시험에 그렇게 매달렸던가,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고 했다. 이번에 같이 2차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 중 상당수가 불합격했다. "함께 공부한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법시험이 폐지됐고,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나이 어린 사시 준비생 상당수는 로스쿨 등으로 진로를 틀었다.


이씨는 내년 3월 사법연수원에 입소한다. 마흔 줄에 접어들어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에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고 했다. 지난 1일 3차 최종 시험을 앞두고서야 카카오톡을 설치했다. "자판기 커피 아닌 아메리카노의 '쓴맛'도 알아가는 중"이라며 웃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13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던 대학 동기들이 하나둘씩 전화를 걸어왔다. 대부분 어엿한 가장(家長)과 아기 엄마로 변해 있었다. 이씨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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