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조선 아낙네의 이혼 요청은 ???!!!
- 브라스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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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낙네가 관아에 이혼을 요청한 까닭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특별전
남편과 잠자리 문제로 억울한 소박
윤리 강조하고 욕망 억압받던 사회
사랑·치정에 얽힌 성 풍속도 조망
‘낭군은 외모로 보면 면목과 몸과 수염이 여느 사람과 흡사하지만 방 안의 일에 이르면 중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서 있는 나무처럼 형체를 갖추었지만 크기만 할 뿐 힘이 없어 사나운 범이 주저하는 듯하니 벌이나 벌레가 쏘는 것만도 못합니다.’
욕망을 억압하는 윤리가 지배적인 사회로 알고 있지만 조선 일상사에도 어긋난 사랑과 그로 인한 파국은 휘몰아쳤다. 16세기 순천김씨 묘에서 출토된 신천강씨의 편지에는 늙은 남편의 외도를 딸에게 하소연하는 아내의 한탄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나이 예순에 시골역의 찰방직을 맡은 김훈은 호기롭게 사치를 부린다고 첩을 들였다. 종들이 알면 질투라고 할까 봐 내색도 못 하는 아내는 “서러운 마음은 일백 권의 종이에도 다 쓰지 못할 것”이라며 “내 손에 죽으리”라고 딸에게 하소연한다.
정약용의 ‘흠흠신서’(1822)에는 조선 후기 백성의 일상사를 보여 주는 사연이 등장한다. 정조 시대 황해도 토산에 사는 김몽세는 병약한 아들이 죽자 며느리와 내연 관계에 있던 김천의를 밟아 죽인다. 병든 남편을 두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부인, 사위의 장례식장에서 딸을 개가시키겠다고 하는 친정 부모, 막 과부가 된 사람에게 공공연히 떠나자고 하는 외간 남자 등 욕망에 솔직한 일상의 단면들이 흥미롭다. 선조 시대인 1602년 박의훤이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려고 작성한 문서, 박의훤 분급문기에서는 조선의 자유로운 연애관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섯 명의 부인과 결혼한 그가 전처 네 명과 이혼한 이유는 모두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번 전시는 전통시대를 새롭게 바라봄과 동시에 그 시대가 지키고자 한 가치의 이면을 진솔하게 살펴보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공휴일·일요일은 휴관.
출처 -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조선일보)
댓글 3
ㅎㅎ 그것참 쩝
아낙네 가 웬만하면 견디고 살일이지 저렇게 노골적인 표현으로
바같양반을 저렇게 우사를 주다니 참으로 강팍스러운 여인네 인가 봅니다
무신 한약이라도 좀 지어서 몸을 좀 추스리게 해야지
그동안 저 남정네는 잠자리 구박이 자심했을 터인대......
얼마나 부실 했으면 저 지경이 됐을까요 그것참 쩝
아낙네 가 웬만하면 견디고 살일이지 저렇게 노골적인 표현으로
바같양반을 저렇게 우사를 주다니 참으로 강팍스러운 여인네 인가 봅니다
무신 한약이라도 좀 지어서 몸을 좀 추스리게 해야지
그동안 저 남정네는 잠자리 구박이 자심했을 터인대......
얼마나 부실 했으면 저 지경이 됐을까요 그것참 쩝
하늘같은 남편의 물건을 "사나운 범이 주저하는 듯하나 벌이나 벌레가 쏘는 것만도 못하다"
하였으니 그옛날 조선시대에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못할 오죽하면 남편에 극악한 표현이다.
사람 사는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를뿐, 다 거기서 거기다. 인생살이 아무리 복잡해도 어두운
고대적 인생이나 누드색처럼 훌러덩 까발라진 초현대 지금의 인생이나 결론은 거기서 거기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