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남이 장군 후손' 불가리아인 카멘 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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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멘 남(59)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대 지리학 교수는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찾았다. 카멘 남 교수는 조선 세조 남이(1441~1468) 장군의 19대 후손으로 알려졌다.
카멘 남 교수의 이번 경기도청 방문은 지난 5월 불가리아를 방문한 남경필 경기지사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남 지사는 불가리아 방문 당시 카멘 남 교수의 가족사를 듣고 한국 방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멘 남 교수는 1989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62세로 숨진 고 남승범 김책공대 교수와 불가리아인 예카테리나 소피아국립대 교수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당시 북한은 부상당한 군인들을 요양과 교육을 목적으로 여러 동유럽 공산 국가들로 보냈다. 남 교수의 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남승범 교수는 불가리아에서 5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 아내인 예카테리나를 만나 카멘 남 교수를 낳았다. 그러나 카멘 남 교수가 2살이던 1959년에 남승범 교수는 귀국 명령을 받았고, 카멘 남 교수 가족은 이산가족이 됐다.
이후 예카테리나 교수는 남편이 있는 북한으로 가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등 노력했고, 북한 주재 불가리아 대사관 비서직에 선발돼 북한에서 남 교수와 재회를 했다. 카멘 남 교수는 당시 너무 어려 불가리아 현지의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남승범 교수는 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대학교수 자리를 빼앗기는 등 고초를 겼었고, 예카테리나 교수는 2년 만에 홀로 불가리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카멘 남 교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는 북한으로 추방됐고, 엄마와 단둘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남승범 교수는 불가리아에 남겨둔 아내와 아들을 보지 못한 채 1989년 숨졌다.
공항에는 아버지 남승범 교수가 북한에서 재혼해 낳은 1남 2녀 중 둘째인 이복 여동생 남율주(가명·49)씨가 마중 나왔다. 남씨는 1998년 탈북해 중국에서 머물다 2007년 한국에 입국했다. 남씨는 몇 년 전부터 전자우편을 통해 카멘 남 교수와 소식을 주고 받았다.
남 교수는 “평생 그리던 아버지 대신 동생을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지나간 시 간에 대한 보상을 여동생에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여동생 남씨도 “같은 아버지를 둔 정으로 오빠를 만나 보니 힘이 된다"며 "북한에 있었으면 못 만났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오빠한테 잘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카멘 남 교수는 다음 달 2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경기도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DMZ, 경복궁, 판교 테크노밸리 등도 돌아볼 예정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국 찾은 '남이 장군 후손' 불가리아인 카멘 남 교수
북한 유학생과 불가리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이복 여동생 만난 카멘 남 교수. /연합뉴스.
을 겪으며 불가리아 대학교수로 성장한 한인 2세가 한국을 찾았다.카멘 남(59)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대 지리학 교수는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찾았다. 카멘 남 교수는 조선 세조 남이(1441~1468) 장군의 19대 후손으로 알려졌다.
카멘 남 교수의 이번 경기도청 방문은 지난 5월 불가리아를 방문한 남경필 경기지사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남 지사는 불가리아 방문 당시 카멘 남 교수의 가족사를 듣고 한국 방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멘 남 교수는 1989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62세로 숨진 고 남승범 김책공대 교수와 불가리아인 예카테리나 소피아국립대 교수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당시 북한은 부상당한 군인들을 요양과 교육을 목적으로 여러 동유럽 공산 국가들로 보냈다. 남 교수의 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남승범 교수는 불가리아에서 5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 아내인 예카테리나를 만나 카멘 남 교수를 낳았다. 그러나 카멘 남 교수가 2살이던 1959년에 남승범 교수는 귀국 명령을 받았고, 카멘 남 교수 가족은 이산가족이 됐다.
카멘 남 교수가 어린시절 불가리아에서 아버지 남승범 교수, 어머니 예카테리나와 함께 찍은 사진. /경기도 제공.
이후 예카테리나 교수는 남편이 있는 북한으로 가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등 노력했고, 북한 주재 불가리아 대사관 비서직에 선발돼 북한에서 남 교수와 재회를 했다. 카멘 남 교수는 당시 너무 어려 불가리아 현지의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남승범 교수는 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대학교수 자리를 빼앗기는 등 고초를 겼었고, 예카테리나 교수는 2년 만에 홀로 불가리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카멘 남 교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는 북한으로 추방됐고, 엄마와 단둘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남승범 교수는 불가리아에 남겨둔 아내와 아들을 보지 못한 채 1989년 숨졌다.
공항에는 아버지 남승범 교수가 북한에서 재혼해 낳은 1남 2녀 중 둘째인 이복 여동생 남율주(가명·49)씨가 마중 나왔다. 남씨는 1998년 탈북해 중국에서 머물다 2007년 한국에 입국했다. 남씨는 몇 년 전부터 전자우편을 통해 카멘 남 교수와 소식을 주고 받았다.
남 교수는 “평생 그리던 아버지 대신 동생을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지나간 시 간에 대한 보상을 여동생에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여동생 남씨도 “같은 아버지를 둔 정으로 오빠를 만나 보니 힘이 된다"며 "북한에 있었으면 못 만났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오빠한테 잘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카멘 남 교수는 다음 달 2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경기도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DMZ, 경복궁, 판교 테크노밸리 등도 돌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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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 4
그렇게 역적으로 고문을 받던 남이장군
같이 모의한 사람을 대라고 엄청 심한 고문을 받는다
견디다 못한 남이 한사람 이름을 대는데
그당시 몸보신이나 하던 대신을 물고 들어갔다
그대신도 잡혀와 고문을 당한다 그 대신이 남이에게 물었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대가 나를 물고 들어갔는가 하고
그러자 남이가 하는말
대감은 내가 무고한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했소
약관인 내가 죄없이 죽는데 대감이 높은자리에 있으면서
그럴수가있소
나는 약관으로 억울하게 죽는데 살만큼 사신 대감이야
무엇이 억울하게소.
하여 몸보신이나 하고 할일을 하지않은 대감과
같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같이 모의한 사람을 대라고 엄청 심한 고문을 받는다
견디다 못한 남이 한사람 이름을 대는데
그당시 몸보신이나 하던 대신을 물고 들어갔다
그대신도 잡혀와 고문을 당한다 그 대신이 남이에게 물었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대가 나를 물고 들어갔는가 하고
그러자 남이가 하는말
대감은 내가 무고한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했소
약관인 내가 죄없이 죽는데 대감이 높은자리에 있으면서
그럴수가있소
나는 약관으로 억울하게 죽는데 살만큼 사신 대감이야
무엇이 억울하게소.
하여 몸보신이나 하고 할일을 하지않은 대감과
같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국인 특유의 시셈으로 인한 모략을 이야기 할때 남이장군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남이장군의 그 억울함은 조선시대의 역사에 억울한 역모죄의 극치로 27세의 나이
에 병조판서로 죽음을 당한 시셈에 의한 억울한 조선최대의 비극이랍니다
(남아 20 에 미평국이면 후세수칭 대장부랴)
이구절에서
간신의 모함으로 미득국으로 변하면서 참수를 당한 남이장군
예나 지금이나 그런 몹쓸인간들때문에 어진현자들이
그렇게 갔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