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런일이…승객안전담보 음주비행

by 인선호 posted Feb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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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설(說)로만 떠돌던 러시아 조종사들의 음주(飮酒)비행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러시아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 모스크바 타임스가 3일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들은 작년 12월 28일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Aeroflot) 소속 SU-315편의 출발 지연과 작년 9월 14일 88명의 탑승자 전원을 희생시킨 아에로플로트-노르드 소속 항공기의 페름시(市) 추락이 조종사들의 음주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아에로플로트-노르드 소속 보잉 737-500 여객기의 추락원인은 당초 엔진고장으로 알려졌으나, 부검결과 조종사들의 혈액에서 알코올 성분이 발견됐다.

또한 SU-315편의 경우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대목이어서 러시아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2008년 12월 28일 오후 3시 30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출발하기 직전, 러시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Aeroflot)소속 SU-315편에서 기장 알렉산드르 체플렙스키(Cheplevsky)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조종사가 러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러시아어로 방송을 할 때는 기장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승객들이 생각했지만, 같은 내용을 다시 영어로 반복할 때는 조종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훗날 이 항공기 탑승객 하투나 코비아슈빌리(Kobiashvili)는 “당시 조종사의 방송을 듣자마자 생각난 것이 ‘아이 사람이 취했구나’ 하는 것이었죠. 술에 취해 말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니 조종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겁니다”고 말했다.

당시 이런 느낌은 다른 탑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승객들은 당장 승무원들에게 “불안해서 이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승무원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황당 그 자체였다. “괜히 문제를 만들지 마세요, 아니면 비행기에서 내리시던가요.” 타티야나 보론초바(Vorontsova)라는 승객은 답답한 마음에 아에로플로트 본사에 전화를 했으나 대답은 승무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종사가 술 마시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은 불가능하니 이만 전화 끊어주시겠습니까?”

불안감에 치를 떨던 승객들. 그러나 이 때 젊고 아리따운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크세니아 소브차크(Sobchak·27).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Medvedev)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Putin)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고(故) 아나톨리 소브차크의 딸로, 러시아의 유명 여성 방송인이다. 같은 항공기에 탑승했던 그녀가 요로에 전화를 하고 나서야 4명의 조종사는 3시간여 만에 강제로 교체됐다.

사건 발생 직후 아에로플로트 대변인 이리나 단넨베르크(Dannenberg)는 조종사들의 음주여부에 대한 논평을 거부하면서 “조종사들이 승객들에게 혼란을 준 점 때문에 교체된 것일 뿐”이라고만 말했었다. 그러면서 출발 지연 비용이 엄청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소브차크에게 묻겠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3주일 후 아에로플로트는 “조종사 체플렙스키가 비행 직전 통증으로 고생했었다. 사건이 일어난 뒤 검진을 했으나 알코올 중독은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비행 전날인 12월 27일 체플렙스키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과음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12월 28일 기내에서 체플렙스키의 상태를 목격한 100여명의 승객은 “조종사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당시 30분간이나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겠다”며 버티다 마지못해 조종석에서 충혈(忠血)된 눈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온 체플렙스키는 승객들과 마주쳤다. 탑승객 카챠 쿠슈네르(Kushner)의 증언. “조종사 체플렙스키는 처음에는 마치 우리가 미친 것처럼 두 눈을 뜨고 우릴 바라봤죠. 승객들이 물러서지 않자,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한 듯 ‘구석에 조용히 처박혀 있겠습니다. 우리에겐 3명의 조종사가 더 있어요. (조종석의) 계기판에 절대 손대지 않겠습니다. 약속하죠!’라고 했어요.”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에로플로트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에 “만약 조종사가 술에 취했더라도 별일 아닙니다. 왜 그러냐구요? 사실 조종사가 하는 일이란 것은 버튼 몇 개 눌러 비행기를 날게 하는 것 뿐이죠”라고 말했다.

체플렙스키의 기내방송을 통해 음주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3개월 전 페름시에서의 승무원·탑승객 전원 사망 사고처럼, 국제선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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