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언론을 통해 본 탄핵정국

by Khadija posted Mar 26,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한국 국민이 뽑은 현직 대통령이, 역시 국민이 뽑은 국회에 의해 탄핵되는 일이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때는, 프랑스 시간으로 3월 11일 목요일 밤에서 12일 금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랑스 최고의 뉴스 시청률(약 40%, 매일 저녁 9백만의 시청자가 시청)을 기록하는 민영방송 TF1의 3월 12일 저녁 뉴스에서 한국 관련 기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이유는 간단하다. 그 하루 전날인 3월 11일 아침 마드리드에서 190여명이 사망하고 1200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졌고, 3월 11일부터 약 일주일간 TF1의 저녁뉴스 전 꼭지가 이와 관련된 기사로 거의 홍수를 이뤘기 때문이다.

‘한국 국회 활극’ 다룬 프랑스 언론대한민국 국회에서 이뤄진 20여분간의 눈물겨운 사투가 프랑스 방송의 전파를 타고 천만 시청자들에게 흥미롭게 전해질 수 있었던 기회는, 갑자기 일어난 장외 요인으로 인해, 다행스럽게도(?) 무산됐던 것이다. 물론 뉴스 전문 채널인 LCI나 I-Television 등에서까지 그런 요행을 바라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상황은 신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이 탄핵정국 발생일 다음날인 3월 13일자 지면을 통해, AFP발 기사를 재인용하며 매우 건조하게 사건을 기술했을 뿐 특별하게 눈에 띄는 기사는 없었다. 물론 ‘국회 활극’에 관한 짧은 언급까지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리베라시옹(3월 13일자)은 도꾜에 나가 있는 35세의 젊은 프리랜서 특파원 미쉘 템만의 기사를 통해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는 국회의원들이 의자를 어지럽히고 다른 국회의원들은 반대파에게 신발을 날리고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그나마 가장 긴 지면을 할애한 곳은 역시 국제기사를 많이 다루는 르몽드였다. 이번에도 한국 소식은 도꾜 특파원 필립 뽕스의 손가락 끝을 통해 전달됐다. 3월 13일자 기사를 통해, 이미 스트레이트성 기사를 송고한 필립 뽕스는 3월 16일, 당시까지의 상황을 정리한 분석 기사를 다시 한번 송고했다.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온건한 고건 총리는 한국의 모든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국민 여론과 국제사회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한 것이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기간을 출범시킨 것은 사실이며, 회복 중에 있는 경제에 파급효과를 일으켜 사회적 긴장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국에서 기다려지는 가슴 뿌듯한 한국 뉴스필립 뽕스는 이후 매우 당연하게도 차분한 어조로 ‘촛불시위’와 ‘노무현 대통령 집권의 의미와 세대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그리고 위기감에 결국 ‘최악의 정책’을 들고 나선 민주당과 이에 동조한 한나라당이 과연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하며 기사를 마무리지었다. 멀리 이국 땅에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나 ‘IMF 환란’ ‘씨랜드 화재 참사’와 같은 가슴아픈 뉴스에 마음 저려 하기보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동안 프랑스 방송사의 화면을 가득 채웠던 ‘붉은 물결’과 같은 가슴 뿌듯한 기사를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