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어린 두 딸과 봉고차 생활…

by 허승현 posted Nov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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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봉고차 생활을 끝내고 어렵게 얻은 단칸방. 방의 냉기를 막기 위해 손재주 좋은 청일씨가 각목으로 방을 이층 침대처럼 만들었다.

청일(가명, 42세) 씨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각목으로 단칸방에 이층 공간을 만들었다. 방바닥의 냉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텔레비전도 없는 이곳에서 금비(가명, 12세)와 은비(가명, 11세)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다. 오래된 먼지와 쓰레기, 묵은 옷가지가 빈틈없이 방을 메우고 있다.

봉고차에서 3년

청일 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4세, 5세 두 아이를 도맡았다. 자취방을 벗어나 아이들을 잘 씻기고 안전하게 재울 수 있는 전세를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보증을 서주지 않았다. 세상이 밉고 멀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봉고차를 개조해 아이들을 태우고 3년을 길 위에서 생활했다. 약수터에서 먹고 씻었으며 일거리가 생기면 차를 몰아 어디든 달려갔다. 지붕을 고쳐주고 받은 돈으로 봉지쌀과 된장, 라면을 마련했다.

“한번은 정읍에 큰 눈이 와서 지붕이 많이 무너졌어요. 차가 도로에 멈출 정도의 폭우였죠. 집집이 다니며 지붕을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얼마간 끼니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었어요.”

식물채집으로 끼니 해결

“씹어서 쌉싸름한 맛이 나면 먹었어요. 한해 지나니까 민들레와 쑥이 나오는 봄이 가장 기다려지더라고요.”

맨밥에 된장을 비벼먹는데 목에 걸려 잘 안 넘어갔다. 고민 끝에 먹을 수 있는 풀을 구별해 밥에 넣고 먹으니 꿀맛이었다. 아이들도 투정 없이 잘 받아먹었다.

전기충전기로 겨울 난방을 해결했는데 종종 자다가 배터리가 방전되기도 했다. 작동을 멈춘 전기장판 위에서 솜이불을 두르고 두 아이를 힘껏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했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

청일 씨는 차를 팔고 그 돈으로 자취방을 얻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자취방에는 별도의 욕실이 없었고 아이들은 봉고차에서 생활하던 습관 그대로 한꺼번에 몰아서 씻는 일에 익숙했다. 금비는 매일 같은 차림으로 학교에 등교했다. 영양이 부족해 얼굴에 하얗게 버짐이 폈다.

금비와 은비는 갈수록 말 수가 줄었고 청일 씨는 이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정읍에서 택시 일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에게 칠백만원을 빌려 지금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왔다. 비좁았지만 욕실이 딸려있었고 아이들은 매일 머리를 감을 수 있게 되었다.

손재주 많은 청일 씨가 각목으로 방을 이층침대처럼 구분해 방의 냉기를 막았다. 아래 공간에 옷 박스를 두고, 이층 공간에 전기장판을 깔아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를 차단해 아이들을 따뜻하게 재웠다.

딸들에게 방이 필요합니다!

“한 달 수입은 백만 원 정도 됩니다. 대부분 회사에 내는데, 남은 돈으로 생활비가 딱 떨어져요.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다만 딸들에게 방을 만들어주지 못 해 미안하죠.”

아이들은 저녁을 정부가 지원하는 공부방과 교회에서 해결한다. 가족 모두 불균형한 영양섭취로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얼마 전 전세 계약이 만기 되면서 빌렸던 보증금을 갚았다. 집주인에게 20만원 월세를 내며 두 달만 기다려달라고 통사정을 한 상황이다. 천 원 김밥 2줄로 하루는 버티는 청일 씨 형편에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금비와 은비는 일찍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만 생활한 탓에 타인의 관심을 몹시 불편해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에게 사적인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두 아이에게 자기공간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물건을 관리하는 습관이 몸에 붙도록 이웃어른들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는 당연히 주어지는 소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선물로 비로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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