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작가 이효석 딸 월세방서 병마와 싸움

by 허승현 posted Nov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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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1907∼1942)의 맏딸 이나미(79·사진)씨가 5년째 지하 월세방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씨는 1982년 이효석기념사업회와 이효석문학연구회를 창립하고 1983년과 2003년엔 국내외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이효석전집’(전8권)을 펴내는 등 부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그의 문학을 집대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국내 학자들은 물론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의 이효석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나 2006년 말 운영난으로 기념사업회 사무실이 폐쇄됐다. 그 충격으로 쓰러진 이씨는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지금껏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2년부터는 ‘사후 50년’이라는 저작권법에 따라 인세 수입마저 끊겨 이씨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최근에는 함께 지내는 딸 조은정(52)씨마저 병을 얻어 몸져누운 상태다.

“암울한 심정으로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이씨의 이메일을 받고 8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지하 셋방을 찾았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습기에 곰팡이가 피었고, 장판지 밑에 고이는 물을 받기 위해 신문지를 깔아놓았다.

자전에세이 ‘마지막 날의 아버지 이효석’(1999년)을 통해 아버지의 짧은 생애와 조실부모한 자신과 두 동생의 신산한 가족사를 증언한 이씨는 병상에서도 자기만이 아버지의 문학을 제대로 선양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4년 전 아버지 탄신 100주년 때 강원도에서 차를 보내와 평창에 한 번 다녀온 다음부터는 꼼짝도 못하고 있어요. 그분들은 이효석문학관을 짓고, 가산선양회를 꾸려 지원도 받고 적잖은 수입을 올리면서도 저를 외면합니다. 정부에서는 금관문화훈장만 줬지 나 몰라라 합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눈도 안 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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