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MBA


logo

 
banner1
포토뉴스
연재/컬럼


]“기억의 보편적 원리 중 하나는 실제 회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못하는 것은 저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재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보 중에서>

2003년 3월 23일 새벽 인천 중구의 한 무역회사 사무실. 이곳 사장 K씨(당시 46세·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무슨 원한에서인지 범인은 잔혹하게도 그녀의 몸을 17차례나 반복해 공격했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 과다출혈로 말미암은 쇼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감식반은 몇 번이고 현장을 뒤졌지만 혈흔도, 지문도, 족적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어렵사리 목격자를 한 명 찾아냈다. 사건이 나던 날, 옆 건물에서 야간경비를 섰던 A씨였다. A씨는 자정 무렵 문제의 사건 현장으로 누군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차의 번호는 물론이고 종류나 색상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피곤함에 지친 야간 경비원이 옆 건물까지 챙길 이유는 없었다. 지능적인 범인은 칠흙 같은 밤 차의 미등까지 끈 채 차를 몰았다.

경찰은 A씨의 동의를 얻어 법최면(Forensic Hypnosis) 수사를 시도했다. 흐릿한 그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흔적을 끌어낼 마지막 기회였다.

“시간을 5일 전으로 돌립니다. 당신은 야간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최면상태에 들어간 A씨의 뇌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었다. 언뜻 보긴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뇌 한쪽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다. 법최면은 이런 기억의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A씨는 차량이 들어온 시간을 22일 밤 11시 40분쯤으로 기억해 냈다. 주차 후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는 용의자의 뒷모습도 기억해 냈다. 평소에 보던 옆 회사 직원은 아니라고 했다.

최면 수사관은 다시 A씨의 기억을 23일 새벽 1시 30분으로 되돌렸다. 앞서 낯선 차가 빠져나갔다고 진술한 시간이다. 그렇게 기억의 실타래를 찾는 도중 A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남자가 황급히 나와 시동을 걸고 있어요. 화물차와 부딪힐 뻔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어어…차의 모습이 보여요.”

A씨의 뇌는 용케도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 찰나, 잠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는 빨간색, 일반 세단과는 달리 뒷 트렁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A씨는 또 다른 목격자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부딪칠뻔한 화물차 운전사였다. 경찰은 해당 차량을 수배했다.



●악마의 퍼즐 맞추기…잘못된 기억을 보정하라

법최면은 범죄수사에 최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건 현장에 단서는 없고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을 때 최면을 걸어 희미한 기억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끌어내는 수사방식이다. 최면은 이렇게 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기억을 끌어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강호순과 정남규, 유영철까지 최근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는 모두 최면수사가 활용됐다. 아직 최면을 통해 얻어낸 목격자 진술의 법적인 증거능력은 없다. 단, 모아낸 증언을 통해 악마의 퍼즐과도 같은 사건을 재연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증거를 잡아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면수사가 ‘기억의 왜곡’을 수정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몽타주다. 보통 범죄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범인의 얼굴은 실제보다 험상궂다. 두려움의 기억이 용의자의 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법최면은 이런 오류를 최대한 보정한다.

실제 비오는 목요일의 살인자로 불린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이렇게 만든 몽타주에 꼬리가 밟혔다. 2004년 2월 주택가 뒷골목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됐다. 며칠 후 한 30대 남자가 현장 근처 중국집을 찾아왔다. 며칠 전 여자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은 그는 주변을 서성이다 사라졌다. 경찰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이라고 여겨 중국집 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시행했다. 중국집 종업원의 최면 속에서 떠올린 얼굴. 2년 후 정남규를 잡은 수사관들은 깜짝 놀랐다. 몽타주가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최면과 해리포터의 마법의 물약

그럼 최면은 누구에게나 통할까. 답은 ‘아니오’다.

최면은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혼수상태처럼 전혀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최면에 절대 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겐 최면을 걸 수 없는 이유다. 어렵게 최면을 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에 대해선 입을 닫는다. 이 때문에 범인 또는 경찰에게 뭔가 숨기고 싶은 사람에겐 최면수사는 무의미한 결과만을 가져온다.

10년 전인 2001년 5월 19일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토막 난 4세 여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9일 전 실종된 아이였다. 다시 3일 뒤 경기 광주의 한 여관에서 아이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발견됐다. 그 방에 투숙했던 손님이 놓고 갔다고 본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내기 위해 여관 여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몇시간 후, 경찰은 최면수사를 포기했다. 최면유도가 반복됐지만 여종업원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종업원은 최면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최면유도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최면 수사관은 담당 형사에게 “여자가 뭔가 수상하다.”고 귀띔했다. 수상한 여성의 진실은 일주일 후 범인이 잡히고 나서 밝혀졌다. 종업원은 여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성매매 사실이 경찰에 발각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뇌를 굳게 닫은 채 최면을 거부했던 것이다.

최면유도에는 개인차도 있다. 이를 최면감수성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감정표현이 자유롭고 집중력이 강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최면에 잘 걸린다. 반면 매사에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판·검사, 형사, 기자 등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치는 않지만 최면이 걸린 상황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속여 마음 속에 거짓을 진실이라고 각인시켜 놓은 경우다. 단언컨대 최면은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 속의 ‘베리타세움’(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이 아니다. 오히려 더 연구하고 개발시켜야 할 ‘과학’이다. 그만큼 철저한 전문과 양성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door.jpg
?

  1. 기아차 영국서 아우디·BMW 제쳤다

    기아자동차가 영국에서 아우디와 BMW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섰다. 기아차는 영국 유력 자동차 전문지인 'AM'이 발표하는 '200...
    Views404
    Read More
  2. 불황 이혼으로 한국 경제 멍든다

    경기가 불황이면 이혼율이 오른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지난 외환위기 직후 이혼율이 급등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96년에 7만9895건이던 이혼 건수가 외환위기 직후인 98...
    Views463
    Read More
  3. 전여옥, 국회서 여성 2명에 폭행당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27일 국회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전 의원은 이날 오후 1시40분께 국회의사당 본청 1층에서 출입구로 향하던 중 갑자기 나타...
    Views326
    Read More
  4. 미국 내 한인 불법 체류 급증 … 비자 면제 취소 우려할 상황

    미국 내 불법 체류하는 한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 유지가 위태롭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5일...
    Views2157
    Read More
  5. 뛰는 金위에 나는 銀

    최근 금값이 온스 당 1000달러까지 치솟으며 말 그대로 `금값`이 됐지만 상승률 면에서는 오히려 은값이 금을 훨씬 앞서고 있다.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금 가...
    Views438
    Read More
  6. 진로,소주시장에서 롯데 때문에 죽쒔다

    진로가 죽쒔다. 유통 강자 롯데가 지난달 두산주류를 인수하면서 소주시장에 '롯데 인수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진로의 독주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주...
    Views431
    Read More
  7. '초딩'때 탈선 시작…"5-6학년때 술·담배"

    청소년들이 음란물과 술·담배 등 유해물질을 접하거나 성관계를 갖는 최초 시기가 중2∼3학년에서 초등4∼6학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보건복지가족부가...
    Views526
    Read More
  8. "北, 대포동 2호 발사 임박한 듯"…英군사전문지

    북한이 탄도 미사일 ‘대포동 2호’의 발사를 준비 중에 있으며 앞으로 며칠 내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영국 군사 전문 잡지를 인용해 21일 보도했다. 영국...
    Views413
    Read More
  9. 환율 1500원선 '코앞' 코스피 1100선 '붕괴'

    미국 다우지수의 7500선 붕괴 등 대내외 악재로 환율이 20일 1500원 선에 다가서고 코스피 지수는 1100선이 무너졌다. 이날 오전 10시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Views426
    Read More
  10. 北 "남북 물리적 충돌 시간문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한국군과 미군이 “무력증강과 북침전쟁 연습”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남북 간 물리적 충돌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미제와 ...
    Views331
    Read More
  11. 이런 대사도 있나…권철현, 장로 임직식위해 日서 귀국

    권철현 주일대사(사진)의 부적절한 국내행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돌연한 일시 귀국에 이어 석달 만에 교회 장로 임직식을 위해 귀국한 데다, 부산에서 대...
    Views374
    Read More
  12. 전두환 전 대통령 '뒷짐 조문' 구설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뒷짐 조문'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러 간 자리에서다. 전 전 대통령이 김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
    Views418
    Read More
  13. 나가요걸 “휠체어 타고 미국 나가요”

    한·미 무비자 시행 이후 20대 여성들의 미국 원정 유흥업소 아르바이트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흥업소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20대 여성들이 최근에는 미국에서 입국거...
    Views443
    Read More
  14. 추락하는 환율, 날개가 없다…1500원도 뚫린다?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좀처럼 꺽이지 않고 있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400원이 무너진 이후 악재만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오름세를 멈출 수 있는 ...
    Views526
    Read More
  15. 29년만에 밝혀진 고 김 추기경의 '5ㆍ18 비밀편지'

    지난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1980년 5ㆍ18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두환 군부의 광주 무력진압과 재진입을 온몸으로 막겠다는 비밀편지를 광주 가톨릭사제에게 보냈던 사...
    Views416
    Read More
  16. 전쟁터가 돼버린 스포츠센터…희생자 빈소 울음·탄식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 스포츠센터 붕괴사고 현장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시간여가 지난 17일 오후 7시45분께 스포츠센...
    Views519
    Read More
  17. 北 “뭐 쏠지 두고보라” 발사 임박 암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미사일 정찰기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고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Views422
    Read More
  18. 김수환 추기경 선종…"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16일 오후 6시12분 별세했다.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善終) 했다. 김 추기경은 건강이 악화되...
    Views372
    Read More
  19. 北, 볼테면 보란듯 해안포 위장막 벗겨

    15일 오전 서해 대연평도 북쪽의 망향비(望鄕碑) 전망대. 남북의 해상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 일대 바다가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다가왔다. 대연평도와 NLL 간 직선...
    Views448
    Read More
  20. 불꺼진 강남 룸살롱…한국 경제의 축소판인가?

    “월수입이 1000만원 가까이 됐지만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 2000년대 이래 이런 불황은 처음이다.” 강남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사장의 하소연이다. 강남의 고급 룸살롱...
    Views67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 234 Next
/ 234
상호명 : 투데이닷컴(웹)/한인투데이(일간지) / 대표자 : 인선호 / E-Mail : hanintodaybr@gmail.com/webmaster@hanintoday.com.br
소재지 : R. Jose Paulino, 226번지 D동 401호 - 01120-000 - 봉헤찌로 - 상파울로 - 브라질 / 전화 : 55+(11)3331-3878/99721-7457
브라질투데이닷컴은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정식 등록사입니다. Copyright ⓒ 2003 - 2018 HANINTODA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