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화가 난 것처럼 비쳐질 정도였다. 예정보다 45분이나 길어졌음에도 정상회담에선 끝내 성과가 없었음을 직감케 했다.

11일 오후 2시15분. 역시 예정보다 15분 지연된 시간에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장인 청와대 충무실에 그렇게 입장했다. 이번 회담의 최대 이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실패가 두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앗아간 듯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표정과 발언이 좀 더 ‘심각’하고 ‘강렬’했다. “미국의 수출규모를 100억달러 증가시키고 미국 내 7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으며,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일자리 창출과 더 많은 선택을 준다.”

모두 발언에서 한미 FTA의 윈윈효과를 구체적 수치를 열거하며 강조하고, “앞으로 며칠, 몇주간 쉬지 않고 노력해 합의토록 지시했다”고 발언하는 모습에서 ‘절박감’이 느껴졌다.

이날 회담은 예정시간인 30분을 45분이나 훌쩍 넘겨 1시간15분 동안 진행됐다. 양국 실무진의 한미 FTA 관련 기자회견 준비에 다소 많은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한 시간 잡혀 있던 오찬은 3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찬 메뉴로는 미국산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가 올랐다고 한다. 한미 FTA 타결을 전제로 준비된 메뉴인 듯했다.

양국 정상은 회견에서 자국 입장을 설명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이 대통령은 “한미 간 불공정무역이 아니냐”는 물음에 “미국 사람들은 무역역조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1년에 80억달러 정도”라며 “미국에 로열티를 문다든가, 다른 서비스 비용을 보태면 거의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그것도 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으로, 예정에 없던 답변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비판적 질문에 “미국이 성장하지 않으면 나머지 세계에 좋지 않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담과 오찬 도중 가벼운 농담을 섞어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애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한국에는 정말 좋은 두뇌가 많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덕담에 “좋은 두뇌가 있긴 하지만 좋은 곳에 쓰는 사람도 있고, 나쁜 곳에 쓰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 폭소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또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한국에 핫머니(단기투기자금)가 유입될 우려가 없느냐”는 질문엔 “그런 질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없을 때 해야지, 같이 있을 때 하면 되느냐”고 ‘조크’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참석했고, 미국 측에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 톰 도닐론 국가안보보좌관, 제프리 베이더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