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의 현장검증이 사상구 덕포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길태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동안의 범행들을 태연하게 재연했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하지만, 자백에서 밝히지 않았던 이 양의 납치 과정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길태는 별다른 동요없이 오히려 태연했다.

16일 오전 10시, 김길태는 경찰의 삼엄한 감시 아래 사상경찰서 유치장에 빠져나와 무덤덤한 표정으로 호송차에 올랐다.

검은색 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고, 검은색 체육복 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김길태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검증은 부산 사상구 덕포동 재개발 예정지인 이 양의 집에서 시작됐다.

이 양의 집앞에서 선 김씨는 당시 상황을 생각하려는 듯 눈을 잠시 감았다 떴지만, 이 양의 집에 침입해 납치한 과정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찰은 이 양의 다세대 주택 다른 빈집을 보여주며 "이곳을 아느냐?"고 묻자, 김길태는 "갈 데가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면서 이 양의 집은 모른다고 답했다.

다락방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갔냐는 질문에도 계속 '모른다'고 답하면서 경찰관이 대역으로 침입 장면을 재연했다.

이어 이 양의 방에서 "방 내부가 기억나느냐"는 물음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경찰이 화장실 등에서 발견한 족적을 제시하자 "들어올 리가 없는데 증거가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또, 시민들의 쏟아지는 욕설을 의식하는 듯 "이 현장검증도 솔직히 이해가 안된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경찰은 이 양이 납치될 당시 입었던 옷차림(분홍색 치마, 흰색 티셔츠)을 한 어린이 크기의 마네킹을 놓고 납치 장면을 재연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며 자백에 이어 이 양을 납치한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어 김길태가 좁은 골목길을 따라 150ｍ 정도 떨어진 무속인 집으로 이동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자 인근에 있던 주민 수백명은 참았던 분노를 쏟아냈다.

주민들은 "어떻게 어린것에게 그렇게 못된 짓을 할 수 있느냐! 뻔뻔하다, 얼굴을 들어라!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태연할 수 있느냐"고 욕설을 퍼부었다.

또, 경찰의 삼엄한 경비에 대해서도 "뒤늦게 이제와서 난리를 부린다고 이 양의 살아 돌아오나. 실종 직후 제대로 수색만 했어도 어린것을 살릴 수 있었다"고 초동수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이날 현장검증은 이 양의 집에서 시작돼 성폭행 및 살해현장으로 지목된 무당집 가옥, 이 양의 시신을 옮겼던 빈집, 시신을 유기한 물탱크, 범죄의 근거지가 됐던 김 씨 옥탑방, 최종 검거장소 등 6곳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들 지역은 모두 반경 500ｍ 안에 있지만,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고, 김길태를 보려는 시민들이 현장검증의 동선에 따라 함께 이동하면서 곳곳에서 혼잡이 빚어졌다.

경찰은 이날 현장검증에서 김길태가 소주 4~5병을 마신 뒤 어떻게 이 양을 납치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치밀하게 물탱크에 유기한 과정을 꼼꼼히 살피면서 진술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보강할 계획이었지만, 여전히 김길태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