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생존형 멀티잡’ 직장인

by 장다비 posted Jan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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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김모씨(33)는 1개월 전까지만 해도 두 가지 일을 했다.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 이유는 간단했다. 낮일로 겨우 입에 풀칠은 가능했지만 결혼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 뒤 한동안 백수로 지냈던 김씨는 지난해 여름 소규모 벤처 기업에 입사했다. 급여는 120만원. 자취생활이었지만 아무리 절약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식비 30만원, 케이블 TV·통신비 15만원, 교통비 10만원, 전기세 5~6만원, 냉난방비 10여만원, 수도·청소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20여만원에 불과했다.


김씨는 결국 입사 한 달 만에 대리운전 업체를 찾았다.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밤거리를 헤맸다. 때론 5만원 이상도 벌었지만 최근 대리운전 기사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심해져 수입이 급감한 데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한 탓에 건강마저 나빠져 포기했다.

경기불황 속에 투잡(Two Job), 스리잡(Three Job) 등 이른바 '멀티잡(Multi Job)'을 가진 사람이 늘고 있다. 본업 한 가지만으로는 생존 자체가 힘들어진 데 따른 것이다.

취업 포털 인쿠르트가 지난해 직장인 1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15.5%가 부업을 갖고 있었다. 부업하고 있다는 응답자 중 12.9%는 3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80% 가까이는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부업을 갖지 않았다고 응답해 결과적으로 위기 이후 투잡, 스리잡으로 내몰렸음을 나타냈다.

투잡, 스리잡을 택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30.3%는 '수입이 줄어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25.4%는 '물가가 올라 생활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절반 이상이 먹고 살려고 투잡, 스리잡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쿠르트 관계자는 "경기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는 극히 제한된 계층에 국한된 얘기"라며 "요즘 멀티잡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훨씬 많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직원인 박모씨(36)는 주말에 웨딩촬영 일을 한다. 일종의 아르바이트다. 지난해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가계가 휘청했다. 급여는 200만원을 약간 넘는 수준.

박씨는 "다행히 월급은 줄지 않았지만 물가가 올라 실제 수입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두 아이 밑으로 기저기값과 분유값만 5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반지하 월세에 살기 때문에 내집 마련 꿈까지 이루려면 월급 20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지인의 도움으로 일감은 1주일에 한두 건은 들어왔다. 박씨는 "주말에 뛰어봐야 고작 용돈 수준이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사실 투잡할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고 말했다.

박씨의 말처럼 본업이든 부업이든 일이 있다면 그나마 낮다. 백수 생활을 벗어나기에도 벅찬 삶은 도처에 널려 있다. 김영민씨(가명·30)는 적은 돈을 주는 직장이라도 구하고 싶다. 새해 들어 나이 앞자리가 '3'자로 바뀌자 더 조급해졌다.

서울권 4년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김씨는 토익공부, 인턴 등 취업을 위해 졸업을 늦추며 준비했지만 2008년에 막상 졸업해보니 취업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

'묻지마 지원'을 통해 한 시민단체에서 6개월 정도 일했지만 결국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이후 공공기관에서 사무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나마 연초가 되면서 아르바이트마저 사라졌다.

김씨는 스스로를 "처절한 삶"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현재 공과금까지 포함한 월세 25만원짜리 방에 산다. 그는 "돈이 부족하면 맨밥에 간장을 말아 먹기도 한다"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을 못했다는 사실을 집에 알리지 않아 부모님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줄 아신다"고 말했다. 취업 실패를 겪고 적성을 찾아 살아보려고는 했지만 나이에, 경력에, 심지어 외모까지 걸리는 것은 더 많아졌다.

"올해가 제대로 취업하기엔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제가 키가 작아서인지 학원강사를 하려고 해도 외모 때문에 채용이 잘 안되더라고요. 아르바이트라도 당장 구해야 하는데 나이제한이 없다고 해도 당연히 어린 친구들을 선호하니까, 취업은커녕 시급 4500원을 벌기도 쉽지 않아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루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15~24세의 고용률은 23.8%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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