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사장이 '황산 테러'로 되갚아"

by 인선호 posted Aug 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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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낮이었지만 병실 안은 어두웠다. 화상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빛을 차단한 곳에 김정아(26·가명)씨가 있었다.

그는 지난 3일 사단법인 ‘함께하는 사랑밭’이 인터넷에 동영상을 공개한 뒤 수많은 네티즌들의 위로와 응원을 받고 있다. 김정아씨는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란 말로 입을 열었다.

김정아씨는 지난 6월 8일 ‘황산 테러’를 당한 뒤 6차례 큰 수술을 받고 피부 재활을 위한 다음 치료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사고 직후 병원에서 줄곧 치료를 받던 김정아씨는 최근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자신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고 이후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병실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친구들의 전화를 받고 1층에 내려가 인터넷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수많은 네티즌들의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며 김정아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사고 이후 6~7시간이나 되는 큰 수술을 6차례나 받을 동안 김정아씨는 산소 호흡기까지 착용할 정도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내어 황산에 녹아 내린 얼굴 부위로 이식하는 수술의 고통을 겪었다.

김정아씨는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고통의 시간, 그녀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가족들이 그녀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김정아씨가 그토록 극도의 고통을 참아가며 치료를 하는 동안 정작 용서를 구해야 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한 번은 가해자들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찾아왔었어요. 처음엔 용서를 구하러 온 줄 알았죠. 하지만 알고 보니 합의해 달라고 온 거였어요. 더구나 자신이 가장 죄가 덜한 가해자(현재 불구속된 남모씨)의 부모인 것처럼 행세하더라고요.”


◆ “믿음직스럽던 가해자 이씨, 결국 ‘황산 테러’로 되갚아…”

경찰 수사 결과 ‘황산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28)씨는 본래 김정아씨의 가족들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씨가 종종 김정아씨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했을 정도.

“어리긴 하였지만 나름대로 딸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인 만큼 집 앞에 찾아오면 과일을 깎아주거나 음료수를 건네주곤 했어요.”(김정아씨의 어머니)

하지만 이씨는 김정아씨 가족들의 이러한 호의를 ‘황산 테러’로 갚았다. 이씨는 원래 촉망받는 벤처기업 경영인이었다고 한다.

“체구도 좋고 화술이 뛰어나 주변인들이 신뢰하는 편이었죠.”

하지만 그는 지난 2007년 무렵부터 회사 경영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김정아씨에게 ‘투자금’을 부탁했고, 평소 회사와 그를 믿었던 김정아씨는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에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8개월이 넘도록 월급조차 받지 못한 김정아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이씨에게 “밀린 월급은 안 받아도 좋으니 ‘투자금’만이라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씨는 전혀 반응이 없었고, 1년이 넘은 민사소송 끝에 지난해 10월 김정아씨가 승소했다.

그러나 패소한 이씨는 돈을 돌려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종종 김정아씨의 집을 맴도는 가운데 김정아씨의 가족들은 불안에 휩싸였다고 한다.

“한 번은 집에 있는데 평소와 달리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겁이 나서 한참을 가만히 있으려니까 누군가 쓱 지나가는 게 문 밖으로 보였어요. 어찌나 겁이 나던지….”

김정아씨의 어머니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 “이제 큰 고비는 넘겼지만, 앞으로가 걱정…”

김정아씨의 담당의사는 “김정아씨가 여러 차례의 수술 이후 이제 많이 안정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화상의 경우 그 흉터가 평생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치료기간과 치료비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담당의사의 설명.

다행히 지금까지는 김정아씨가 새로 다니던 직장 상사 및 동료들의 도움으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피부 재활 치료와 그 이후의 재수술을 위해서는 또 다시 수천만원의 치료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김정아씨와 그 가족들에게 네티즌들의 관심과 후원은 큰 힘이 되고 있다. 김정아씨는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1년 후라도 지금보다 상태가 호전되었을 때, 반드시 이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요”라며 빨리 회복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김정아씨의 어머니도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며 “정아가 좀 더 나아지면 큰 절 올리는 동영상이라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김정아씨는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수없이 사고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며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기 때문. 더욱이 ‘2차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김정아씨의 가족들은 인터뷰 내내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아씨는 “얼마 전에 병원 로비에서 한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 너무 무서웠다”며 “앞으로 이러한 불안감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도 싸울 생각을 하면 정말 두렵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가해자들의 처벌에 대해 김정아씨는 “여러 정황들이 충분히 고려되어 처벌 수위가 결정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황산 테러’를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이씨는 심장질환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 중이다.

알리바이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모씨는 불구속, 나머지 2명은 구속된 상태다.

그러나 김정아씨 아버지는 “이전 민사소송 때도 이씨는 건강을 핑계로 출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멀쩡하던 사람이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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