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요구도 없이 3일 만에 ‘묻지마 살해’

by 인선호 posted Jun 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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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예멘 북부 사다에서 실종된 한국인 엄모(34·여)씨가 피랍 3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올 들어 예멘에서 발생한 다른 4건의 외국인 피랍사건에선 최대 3주 안에 피랍자 30명 전원이 무사히 돌아왔다. 주로 몸값을 노린 납치여서 인질을 살해한 사례는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 납치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예멘에선 사건 발생 직후 관련 단체가 납치사실을 밝히고 인질 석방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납치를 주도했다고 밝힌 단체가 전혀 없어, 납치 목적이나 살해 동기 등 제반 정황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예멘 정부는 엄씨 일행을 납치한 단체로 압델 말락 알-후티가 주도하는 시아파 반군을 지목했지만, 반군 측은 자신들을 상대로 새로운 전쟁을 벌이기 위한 정부의 구실일 뿐이라며 즉각 부인했다. 이 처럼 납치 단체에 대한 윤곽이 좁혀지지 않아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생사와 소재는 미궁에 빠져 있었다. 예멘 정부가 피랍장소로 추정되는 사다 외곽의 계곡 주변에서 피랍자들이 탄 승합차의 행방을 파악하기 위해 인근 마을을 탐문하고, 현지 여러 부족을 대상으로 피랍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피랍자 9명 중 7명이 자국인이었던 독일 정부도 실종 직후부터 백방으로 이들의 소재를 알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일단 추정되는 살해 동기는 종교적 이유다. 이번에 피랍된 엄씨 일행은 기독교 단체인 국제의료봉사단체인 월드와이드서비스 소속이다. 외교 소식통은 “불과 3일 만에 여성과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것은 종교적 이유 외에는 동기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신 발견 소식이 전해진 15일 우리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시신이 발견된 사다가 대사관이 있는 수도 사나에서 200km 떨어져 있고 교통과 통신 상태 불량으로 현지 한국인 의사를 통해 한국인 시신 여부를 확인했다. 시신은 발견 당시 훼손이 심한 상태여서 한국인 여부를 즉각 확인할 수 없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예멘 교민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예멘 교민 180여명은 예멘 납치사건의 경우 피랍자가 부족 중재로 대부분 며칠만에 풀려나는 일반적인 예를 떠올리며 무사귀환을 확신해 왔지만 엄씨가 숨진 것으로 전해지자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주 예멘 한국대사관도 지난 3월 자살폭탄 테러사건으로 관광객 4명이 숨진 지 석달만에 피랍자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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