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묻지마 살인>용의자 정씨 "죄송합니다"

by 인선호 posted Oct 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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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20일 서울 강남 고시원 건물에서 세상을 비관해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정모씨(31)는 범행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한마디 했다.

계속되는 질문에도 답이 없자 경찰 관계자가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고 고개를 숙인 정씨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정씨는 검은 색 야구모자와 상하의, 구두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갖춰입었으며 양말도 검은 색이었다.

경찰이 공개한 압수품에는 범행 당시 정씨가 얼굴을 가리는 동시에 피가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검은 색 물안경과 스키마스크, 권총 모양 라이터와 등산용 헤드라이트(조명등)도 포함돼 있다.

정씨는 20일 오전 8시15분께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서 불을 낸 뒤 칼부림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중국 동포 출신 권모씨(60)와 이모씨(50) 등 6명이 숨졌으며 김모씨(45) 등 7명이 부상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망자 6명 시신에서 모두 자상(찔려서 입은 상처)이 발견됐으며 이 중 권씨는 흉기를 피해 창밖으로 뛰어내려 머리골절로 숨졌다"며 "부상자 7명 중 4명은 중태여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들 대부분은 목과 등, 옆구리와 복부 등에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상자 중 2~3명은 자상이 아니라 화재 연기로 인한 기도 손상 등을 입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고시원 내 3층 자신의 방에서 침대에 라이터용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복도로 화재를 피해 뛰어나온 피해자 5~6명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4층으로 올라가 4~5명을 더 찔렀다.

정씨는 불길을 피해 4층 창고 방에 숨어 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경남 합천 출신인 정씨는 중학교 때 자살을 시도한 바 있으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정씨는 경찰조사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그래서 세상이 살기 싫었다"고 진술했으며 돈 문제로 정신적 압박감을 크게 느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2002년 8월 서울로 혼자 상경해 2003년 9월부터 D 고시원에서 거주하며 주로 강남 지역에서 중국집 배달, 주차요원, 식당 서빙 등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왔고, 지난 4월부터는 일정한 직업 없이 지냈다.

정씨는 현재 고시원 임대료 1개월, 휴대폰요금 2개월 등이 연체되고 향군법 및 병역법 위반으로 내야 할 벌금이 150만원에 이르는 등 금전 문제로 세상을 비관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정씨는 범행도구인 흉기와 휘발유를 각각 2005년과 올 초 구입했으며 이날 소지하고 있던 과도 및 가스총도 2004~2005년 사두었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경찰조사에서 흉기 등을 구입할 당시에도 "혼자 죽든지 다른 사람을 살해하고 죽든지" 등의 생각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D고시원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지하 1층과 지상 1~2층은 주점·음식점 등 상가로, 지상 3~4층과 옥탑방 등 총 3개 층은 고시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시원에는 불이 난 3층에 50개, 4층에 35개 등 총 85개의 객실이 있으며 모두 69명의 입주자가 거주하고 있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 33대와 구조대원 100여명을 현장에 출동시켜 30분만에 화재를 진압했으나, 일부 거주자가 불길을 피해 4층에서 뛰어내려 부상자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와 함께 정확한 화재원인 및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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