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에서 근무하는 연주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고등학생의 부모에게 룸살롱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번도 아니고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수백만원대의 향응을 제공받았다.
특히 이 술자리에는 입시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 교수와 각종 음악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서울대 음대 동문들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들은 모두 "입시와 무관한 술자리였고, 학부모가 술값을 계산한 사실도 몰랐다"며 문제로 확산되는 걸 경계하고 있다.
엘리트 음악인과 학부모, 그리고 교수 등 서울 음대 동문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을 약 1년 전으로 돌려보자.
왜 서울대 음대 교수와 동문은 룸살롱으로 향했나 = 경기도 모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며 관악기 튜바를 배우던 이모(당시 1학년)군은 2006년 10월 평택의 A고등학교로 전학을 결심했다.
A고등학교 음악교사 김모씨는 서울시향 튜바 연주자인 지아무개(34)씨를 이군에게 새 레슨 교사로 소개했다. 같은 달 말, 이군과 어머니 엄모씨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한 연습실에서 지씨를 처음 만났다. 간단한 시범 테스트를 마친 뒤 엄씨는 자신의 아들을 지씨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튜바 레슨은 그 해 11월부터 시작됐다. 1시간씩 주2회 레슨이었고 교습비는 월 64만원으로 이 중 8만원은 학교에서 지원했다. 레슨의 대부분은 흑석동에 마련된 연습 및 교습실에서 이뤄졌다.
다음해인 2007년 5월 이군은 우현음악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했고 8월에는 서울대학교 관악동문회 주최 관악동문콩쿠르에서도 3등을 차지했다.
이로써 이군은 서울대학교 음대 수시전형에 응시할 자격을 갖게 됐다. 서울 음대 수시전형 응시자격은 지원서 접수 마감일 기준으로 3년 이내 우현음악콩쿠르·관악동문콩쿠르 등 서울대가 지정된 콩쿠르에서 3위 이내 입상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런데 이군이 서울 음대 수시전형 응시 자격을 획득한 시점부터 어머니 엄씨와 레슨 교사 지씨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됐다.
우선 고액의 접대 문제가 불거졌다. 엄씨는 "아들이 서울대 수시전형 응시 자격을 얻은 2007년 8월부터 지씨의 접대 요구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엄씨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들이 서울대 주최 콩쿠르에서 3등을 한 이후 지씨가 '본격적으로 서울대 준비하자, 서울대 아무나 가냐'며 서울대 교수와 동문들 접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위 3학년 선배 한 명이 서울대를 준비하고 있어서 '접대를 해도 그 집에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접대를 요구했다. 결국 일식집이나 한식집으로 예약하겠다고 하니, 지씨가 '장난하냐, 최소한 룸살롱은 돼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어머니 엄씨 "수시전형 자격 얻자마자 룸살롱 요구" = 엄씨는 아들이 아직 2학년인데 벌써부터 무슨 접대인가 싶었다. 하지만 엄씨는 결국 그달 말께 자신의 동생이 실장으로 있는 강남의 한 룸살롱을 예약했다.
엄씨는 "술값으로만 약 600만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수백만원대 술값이 걱정된 엄씨는 양주 발렌타인을 사서 지씨에게 들고 가게 했다. 이것도 동생의 '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씨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이 룸살롱을 이용했다. 함께 술집을 찾은 사람은 매번 달랐는데, 모 방송사 관현악단 연주자와 직원, 서울 음대 교수 1명 등 모두 네 명이다. 이들에게는 서울 음대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씨는 일단 "서울대 동문·교수와 룸살롱을 찾은 건 맞다"고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접대 요구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번엔 지씨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접대를 요구했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다. 어머니가 '그동안 가르치느라 고생했다'며 알아서 술집을 잡아줬다. 부담돼서 몇 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이군의 레슨비도 싸게 받았고, 엄씨의 조카딸도 잘 알고 있어서 술집을 찾았을 뿐이다."
엄씨의 "접대"와 지씨의 "감사표시" 주장이 정면충돌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씨의 주장에는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이군의 레슨비는 A고등학교에서 책정해준 것으로 같은 학교 학생들과 동일하다. 물론 학교나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또 지씨는 "조카딸도 잘 알고 있다"고 했지만 지씨가 엄씨의 조카딸(초등학교 6학년)을 소개 받은 건 룸살롱을 다녀간 뒤 한참 뒤인 2008년 1월경의 일이다. 이 학생도 훗날 지씨에게 튜바 레슨을 받았다.
설령 지씨의 주장이 100% 맞다 해도 수백만원이 드는 술집을 학부모와 안면도 없는 서울대 동문들과 함께 이용한 건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레슨 교사 지씨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어머니가 해준 것" = 지씨는 모든 술값을 자신이 계산했다고 동문들에게 허위로 밝혔다.
함께 룸살롱을 이용했던 모 방송사 교향악단의 K씨는 "지씨와 평소 친하지도 않고 안면도 그리 많지 않은데, 계속 술 한 잔 하자고 졸라서 나갔더니 룸살롱이었다"며 "지씨 본인이 산다고 했고 학부모가 비용을 지불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입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K씨는 각종 콩쿠르에 종종 심사위원으로 나가는 인물이다.
역시 지씨와 함께 룸살롱을 이용한 C 서울대 교수는 "동문이지만 연배가 달라서 지씨와 거의 만난 적도 없다, 지씨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술을 사겠다고 했다"며 "학부모가 술값을 지불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C 교수는 "당시 일은 기억도 잘 안 나고, 기자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피했다. C 교수는 현악·관악·피아노전공으로 구성돼 있는 서울대 기악과에서 관악 분야의 핵심 인물이다.
특히 지씨는 '룸살롱 접대' 약 2개월 뒤 서울대 튜바 담당 강사로 결정돼 뒷맛이 개운치 않다.
서울대 교수 "구체적인 것 기억 안나" = 학부모 엄씨는 룸살롱 접대와 부실 레슨을 주장하며 올해 6월 지씨와 관계를 끊었다. 접대 문제 이후 2007년 겨울부터 지씨가 다른 학생도 가르치기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서울대는 튜바 전공자를 3년에 두 명만 선발한다. 작년에 한 명을 뽑았고, 올해도 한 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입시에서 튜바 전공은 뽑지 않는다. 단 1명만 들어갈 수 있는 '명문대 자리'이다 보니 종종 신경이 예민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레슨이 끊길 당시 지씨는 학생 이군에게 "너희 어머니 지금 실수하는 것이다" "너 내 성질 모르냐, 음악세례를 모르냐"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씨는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씨는 사건이 커지자 "레슨·술값 등에 대해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며 레슨비와 술값 명목으로 지난 7월 1000만원을 엄씨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엄씨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엄씨는 "지씨는 서울대 간판을 무기로 나와 내 아들을 농락하며 결국 자신의 이익만 챙겼다"며 가슴을 쳤다. 지씨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서울대 음대 수시 전형 원서접수는 8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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