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이 매주 모여 '야동' 보는 까닭은?

by 인선호 posted Aug 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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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때아닌 '야동'(야한 동영상) 바람이 불고 있다.

재판 증거물 분석을 위해 마련된 서울중앙지법 영상분석실은 요즘 일주일에 한번꼴로 '야동'이 상영된다. 관객은 재판부 판사들과 검사, 변호사 등이다.

엄숙한 법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 3월부터 대법원이 '음란물 유포죄'로 '유죄 판결'이 났던 사건들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캡처 사진이나 설명만 보고도 '음란물' 여부를 가렸다.

이에 따라 '음란물 유포 사건' 담당 재판부 판사들은 영상분석실에 모여 수백 개의 '야동' 가운데, 가장 야한 장면만 골라 보면서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3월 이후 6건의 음란물 유포 사건을 처리한 최정렬 부장판사는 "여성 판사, 여성 변호사들과 같이 야한 영상을 보는 것은 고역이지만, 이런 식의 '음란물 검증'은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말했다.

과거 법원은 '정상적 성적 수치심을 해하거나, 선량한 성도덕 관념에 반하는 것'이란 추상적인 말로 음란성 여부를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3월 "성인물과 음란물은 구분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해치지 않았다면 음란물로 볼 수 없다"며 기존 판례를 깼다. 우리나라의 음란물 판단 기준은 아직까지 대법원 판례로 정립되는 과정에 있다. 3월 이후 나온 판례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침해 여부다.

아동과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행위나 폭력을 동반한 가학적 성행위 등은 당연히 음란물에 해당한다. 또 성기나 음모를 직접적으로 노출했다면 '음란물'이다. 그러나 성기 등이 순간적 노출됐더라도 의도적·직접적 노출이 아니라면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실제 폭력이 없었다면, 가학적 성도구가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음란물로 규정할 수 없다.

음란물 기준 논란이 여전히 분분한 미국에선, 연방대법원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의 다소 엉뚱한 이론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I know it When I see it(보면 안다)." '음란물'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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