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품에서 버려지는 '라이한궉'

by 인선호 posted May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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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한?(來韓國)'.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난 아이들이다.

그러나 요즘 베트남에선 현지 출생이 아닌 '한국산(産)' 라이한?이 늘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는 한국서 기르지 못해 친정 베트남으로 보낸 이른바 '제2의 라이한?'이다. 엄마들은 때론 형편이 어려워서, 때론 남편과의 불화로 아이들을 친정으로 보낸 것이다.

아이들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한국말도 한국문화도 모른 채 자라고 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외국인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불법 체류자가 되기도 하고, 정규 교육과 예방 접종 같은 기본적인 복지 혜택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 남부 떠이닌성(省)의 한 농촌에서 만난 네 살배기 영은이(가명). 한국인 아빠(40·선원)와 베트남인 엄마(24)를 둔 아이는 지금 베트남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다.

2003년 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아빠와 엄마는 이듬해 영은이를 낳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말과 문화 차이, 돈문제로 계속 다퉜고 결국 2006년 말 아빠는 엄마에게 "애를 데리고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다. 그때부터 영은이는 베트남 외가에서 자라고 있다.

딸을 친정에 데려다 놓고 돈벌이를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엄마는 지난 7일까지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소에 갇혀 있었다. 한국 국적이 없던 엄마는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아빠에게 보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공장 저 공장에서 숨어 일하다가 지난달 단속반에 적발된 것이다.

엄마와 헤어진 지 1년 반, 딸 영은이도 불법 체류자가 됐다. 엄마는 "금방 돌아오겠다"며 딸 여권을 가지고 떠나 왔지만 그 약속이 깨지면서 영은이는 체류 연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 외갓집에서 영은이는 앨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부산 앞바다가 보이는 공원에서 아빠가 엄마를 껴안고 웃는 사진, 부산 집 옥상에서 아빠에 안겨 있는 사진들이었다. 외할아버지(50)는 "저 어린 것이 한 번 앨범을 꺼내면 몇 시간씩 사진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사진을 보던 영은이는 "아빠! 아빠!" 하고 말했다. 1년 반 전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밥, 밥!" 하면서 울던 영은이는 이제 '아빠'를 빼고는 한국말을 다 잊었다. 학교나 유치원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할아버지의 일당 5만동(약 3100원)으로 비싼 한국인학교에 보낼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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