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결혼·대통령 당선…12월 19일은 ‘이명박의 날’

by 인선호 posted Dec 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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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66) 한나라당 후보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신의 생일(1941년)과 결혼기념일(1970년)이 겹친 12월 19일에 또 하나의 역사를 창조했다. 부인 김윤옥 여사에 따르면 “남편이 평생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매년 챙길 수 있도록 자신의 생일날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라고 한다.

아울러 경북 포항 동지상고 출신의 이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15대 김대중(목포상고)-16대 노무현(부산상고) 대통령에 이어 3대 연속 상고 출신이 대통령에 선출되는 진기록이 이어졌다.

19일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후보는 총 47.0%의 득표율(이하 오후 10시 현재∙개표율 57%)로 27.5%의 정동영 후보(대통합민주신당), 15.6%의 이회창 후보(무소속) 등을 큰 표 차로 제치고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이 당선자는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오후 10시께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의 위대한 힘을 발견했다. 매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당선은 유권자들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과 경제 회생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현대건설 사원에서 출발해 대표이사와 회장을 지낸 샐러리맨∙CEO 출신으로 선거 운동 내내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아울러 이 후보의 당선으로 한나라당은 14대 김영삼 대통령(당시 민자당) 이후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이 당선자는 숱한 시련을 강한 집념과 추진력으로 돌파하며 마침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섰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동지상고 야간부에 진학하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95년 민자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패배하고 98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으나 2002년 서울시장 당선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이번 대선에서도 BBK 주가 조작 사건 개입 의혹으로 경쟁 후보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으나 흔들림 없는 정면 돌파로 여론 조사 1위를 놓치지 않으며 끝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냈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을 관철시키는 매서운 업무 추진 능력을 보여 준 이 당선자는 인간적으로는 자상하고 따뜻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녀 1남을 두고 있는 이 당선자는 젊은 시절 기업인으로서 해외 출장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자녀들의 시험 일정과 소풍 날짜 등을 메모해 둬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는 자상함을 잊지 않았다. 또 평생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어머니(채태원씨∙64년 작고)께 새 옷 한 벌 못해 드린 것”을 꼽고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는 “첫 손주를 봤을 때”라고 말하는 가슴 따뜻한 아들이자 할아버지다.

이 당선자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 분열된 우리 사회의 화합과 국민 통합을 반드시 이루도록 하겠다”며 “최선을 다한 정동영∙이회창 후보 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충고를 받아들여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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