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 책임회피만 둥둥

by 운영자 posted Dec 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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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T-5! 응답하세요, 삼성T-5!” “…”충남 태안 앞바다와 해안을 검게 물들인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를 놓고 책임 논란이 일고 있다. 태안해양경찰서가 사고경위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사고가 인재였음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될 만큼 파도가 높았던 7일 오전 5시23분.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실은 대형 크레인을 끌고 가는 예인선 두 척이 인근에 정박 중인 유조선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 초단파(VHF) 무선으로 긴급 호출했다. 하지만 예인선 삼성T-5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1분 뒤 다시 호출했지만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특히 사고 80분 전인 오전 5시50분께부터 예인선들이 항로를 이탈, 충돌 위험이 커지자 관제실은 오전 6시20분께 예인선 선장의 휴대폰 번호를 파악, “대형 유조선이 근처에 있으니 피해서 운항하라”며 전화로 경고했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교신이었다. 이로부터 1시간쯤 뒤인 오전 7시15분 “쾅, 쾅” 굉음을 내며 크레인을 실은 부선이 유조선과 충돌했다.

해경 조사에서 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들은 “예인선이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고, 크레인을 실은 부선과 예인선을 잇는 와이어가 끊어진 상황도 전혀 보고 받지 못했다”며 예인선 측에 책임을 미뤘다.

이에 대해 예인선 관계자들은 “관제실에서 VHF 16번으로 호출해야 하는데 12번으로 호출하는 바람에 교신이 안됐다”고 주장했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선박들은 항상 VHF 통신 16번 채널을 켜놓고 항만 당국의 비상호출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의혹이 쏠리는 부분은 휴대폰 통화 이후다. 관제실과 예인선 선장간 통화가 있은 뒤 1시간 정도면 예인선이 유조선을 충분히 피해 갈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만약 이미 예인선과 부선을 잇는 와이어가 끊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관제실과의 통화 때 이를 보고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충돌 때까지 와이어가 끊어졌다는 보고는 관제실에 접수되지 않았다.

대산해양수산청도 안이한 대처로 의혹을 사고 있다. 항로 이탈과 충돌 위험을 인지한 뒤 예인선을 VHF로 두 차례나 호출하고, 휴대폰으로 경고까지 했지만 이후로는 충돌 시까지 별다른 확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크레인은 대산해양수산청의 경고에도 불구, 항로를 크게 벗어나 유조선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지만 관제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는 “관제실은 선박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 항로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지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해경은 휴대폰 통화가 이뤄진 이후 충돌 시까지 1시간 동안 관제실과 예인선 측이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할 방침이다.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된 와이어가 끊어진 이유도 불분명하다. 삼성 측은 당시 풍랑이 너무 세 와이어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끊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와이어를 비롯한 연결 장비가 노후했거나 불량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경은 끊어진 와이어 부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다.

태안해경은 8일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실 직원들을 소환한 데 이어 9일 예인선 및 부선 선장과 삼성중공업 관계자 등을 소환, 과실 여부를 조사했다. 또 관제실 근무일지와 선박 항적도 등을 확보해 충돌 경위와 안전조치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한편 1993년 건조된 스피리트호가 홑겹인 단일선체여서 충돌시 기름탱크가 바로 파손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이중선체였다면 기름 유출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라는 게 해양수산부의 지적이다. 국제협약에 따라 2010년부터는 이중선체가 아닌 유조선은 항해를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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