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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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기 전날인 4일 평창군청 근처, "꿈★은 이뤄진다" "New Dream @ 평창" "동계올림픽, '강원도의힘'으로 반드시 이뤄내자" 등 강한 의지를 담은 플래카드 사이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던 이 감성적인 문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던 평창은 4년 후인 5일 지구의 반대편인 과테말라에서 고 이영희 할머니의 사연을담은 감성적인 PT로 분단 국가에서의 올림픽 개최 당위성을 호소했다. 동계올림픽 개최라는 '꿈'을 놓치지 않았던 평창군민, 나가서는 대한민국국민들에게 평창은 결국 또 다시 4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꿈의 이름'으로 남게 됐다.

사실 1999년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기간에 김진선 강원지사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처음 선언했을 때도 동계 종목 후진국이자 겨울이 4개월여밖에되지 않는 이 땅에서 설마 열릴 수 있겠냐는 의구심과 자괴감이 팽배해 있었다. 거기에다 평창군은 그 넓이에 비해 인구 4만5000여명에 지나지않아 내국인들에게조차 유명한 1~2개의 스키장이 있는 곳 말고는 딱히 떠오를 게 없었던 은둔의 고장일 수 밖에 없었다.

외국인들에게 북한의 평양과 발음이 헷갈릴 정도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평창은 하지만 결국 두 번 연속 최종 후보지까지 오르며 세계인들의 기억속에길이 남게 됐다. 동계 스포츠의 대표 도시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평창과 두번 맞서서 모두 1차 투표에서 탈락한 것만 보더라도평창이 얼마나 선전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평창군은 지난해 7월 수해로 인해 5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8000억원이 넘는 복구액을 투입, 올림픽 실사단이 방문한지난 2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지혜를 발휘했다.

한 평창군민은 "실사 당시 군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사단의 발자취를 따라 올림픽 개최의 강한 열의를 보였고, 축복의 눈까지 내렸다"며"계속 비가 오다가 유치 기원 행사가 열린 4일부터 유치가 결정된 5일까지 장마가 그치자 많은 군민들이 이는 또 다른 축복이자 길조라 생각했다"며아쉬움에 눈물을 훔쳤다.

평창은 인간의 몸에 가장 적합하다는 해발 700m 지역이 60%를 차지하고 있어 '해피 700'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다 2014년의각 숫자를 모두 더하면 7이 된다. 행운의 숫자 7이 군의 상징이었던 평창이 7이 되는 해에 동계올림픽에 도전했지만 또 다시 쓴잔을 마시고말았다.

하지만 평창군민들의 모습에선 다시 시작하자는 굳은 의지도 읽을 수 있었다. 이효석은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에서 '소금을 흩뿌려놓은 듯피어있는 메밀꽃'이라며 자신의 고향 평창의 자연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평창군민과 국민들이 눈물을 거두고 다시 일어나 아름다운 메밀꽃을 연상시키는웃음꽃을 다시 활짝 피우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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