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추석에 火魔…막막하네요"

by 인선호 posted Oct 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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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추석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네요"

7일 낮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비닐하우스촌. 이 곳 사람들은 추석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송두리째 빼앗겨 망연자실해 하고 있었다.

이날 이른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비닐하우스 41개동 중 35개동이 소실됐고 주민 400여명 중 270여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먹을거리가 있었던 냉장고는 검게 그을려 토사와 잿더미 속에 나뒹굴고 있었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있어야 할 동네에는 깊은 한숨소리와 흐느낌만이 존재했다.

김금례(65.여)씨는 "'불이야' 소리에 놀라 급하게 집 밖으로 나오느라 아들ㆍ딸이 사준 금반지와 팔찌를 불길 속에 두고 나왔다"며 "환갑이라고 자식들이 힘들게 돈을 모아 사준 것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정희(66)씨는 새벽장사에 나가 아직 불이 난 사실도 모르고 있는 아내 걱정에 한층 더 가슴이 아프다.

오씨는 "부인이 '추석이라 애들 뭐 사줘야 한다'면서 새벽에 돈 벌기 위해 장사하러 나가 아직 화재 소식을 모른다. 작년에 심장병 수술을 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데 화재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랄지 걱정된다"며 한숨과 함께 담배 한개비를 물었다.

마을 한쪽 끝에 위치한 마을회관에 모여 피해조사서를 쓰고 있던 주민들은 그래도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칫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다친 사람 없이 진화된 것은 마을 주민들이 불이 난 사실을 일찍 전파하고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왔기 때문이다.

장영자(63.여)씨는 "불이 난 것을 알고 옆집 대문을 두드리며 '불이야' 소리를 질렀다. 몇년을 가족같이 지낸 사람들인데 나만 피할 수가 없었다"고 대피 상황을 전했다.

남용균(33)씨도 "전기가 끊겨 마을 중간에 위치한 확성기에서 대피 방송이 나오진 않았지만 옆집 사람을 챙겨주려는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 때문에 다친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화훼마을은 주거용 비닐하우스들이 모여 군락을 이룬 빈민 거주지역으로, 지난 6년 간 3차례나 크고 작은 불이 났을 정도로 화재에 취약한 지역이다.

송파구청이 인근 가원초등학교에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주민들은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원했다.

신극남(70.여)씨는 "화재가 끊이질 않지만 화재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구호봉사팀의 정혜진(69.여)씨도 "그동안 구호활동을 위해 여러차례 이곳을 찾았지만 화재에 무방비 상태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정부가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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