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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 결혼하고 신혼여행으로 민속촌에 갔었지. 정말 재미있었어. 그런데 다 돌아보고 오지 못했거든. 이번에도 손잡고 거기로 구경갈거야.” 추석계획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임진국(90) 할아버지는 연방 싱글벙글이다.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수십년 동안 매일 오전 6시부터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한 덕분에 할아버지는 영등포 일대에서는 ‘교통부 장관’으로 통한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스타지만 임 할아버지에게 이번 추석은 90평생 최고로 설레는 한가위다. 양아들을 삼기로 한 영등포지구대 김덕기(51ㆍ현 강서경찰서 소속) 경사의 주선으로 지난 5월 ‘금쪽 같은 아내’ 차갑선(75) 할머니와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처음 맞는 명절이어서다.

나이 아흔에 처음으로 유부남 타이틀을 단 임 할아버지에게 그동안의 쓸쓸했던 추석은 이제 남의 이야기다. 친구들이 명절 때면 아내와 자식 손잡고 고향으로 떠날 때, 손주의 재롱을 보고 있을 때 임 할아버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도로에 나가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는 찬밥을 물에 말아 김치로 끼니를 떼우면서 인생의 허전함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려운 살림에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남까지 고생시켜서야 되겠나 싶어 혼자 살았다”는 임 할아버지는 이번 추석에는 아내는 물론이고 아들 식구까지 포함해 일가(一家)를 이룬 만큼 재벌 부럽지 않은 ‘추석맞이 특별여행’ 계획을 오래전부터 짜고 또 짰다.

임 할아버지는 기자가 온다기에 큰맘 먹고 집 근처 떡집에서 송편을 샀다며 연방 권했다. 신혼집이라고 해봐야 5평 남짓의 빠듯한 공간, 한눈에 봐도 생활이 여의치 않지만 임 할아버지 부부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는 넉넉했다. “우리 아들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얼굴을 보거든. 어떻게 할까. 이번에 아들 내외랑 손주들도 민속촌에 데려갈까”라며 부인을 바라보는 임 할아버지의 눈길에는 애정이 듬뿍 배어 있다. 차 할머니는 “우리 아들이 참 잘하거든. 같이 가자고 합시다.

며느리는 미용실을 하는데 난 거기 가서 파마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 먹어”라며 며느리 명함까지 꺼내 보인다.

임 할아버지는 황혼결혼을 한 후 웃는 날의 연속이었다. 중풍으로 쓰러진 탓에 한동안 봉사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차 할머니의 보살핌 덕분인지 결혼 직후부터 다시 도로에 나설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차 할머니는“저 양반이 업어달라면 두 말 않고 등을 내밀어야 이쁨 받아”라고 귀띔했다. “양보하고 인내하면 교통사고도 안 나고 다칠 사람도 없다”는 임 할아버지의 ‘교통철학’과 차 할머니의 애교만점 사랑론이 만나 천생연분을 이룬 셈이다.

“혹시 소원은 없냐”고 묻자 “할머니가 힘들게 손빨래를 하는데 세탁기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했고, 차 할머니는 “역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맞장구친다. 노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맞는 한가위는 이렇게 풍성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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