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가족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독극물이 투입된 줄도 모르고 콜라를 마셨다가 화를 입은 이아무개(25·광주시 북구 우산동)씨가 17일 충남 천안시 순천향대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 있다. 8일째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있는 그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라는 날벼락을 맞은 경우다.
이씨는 광주의 한 가구점에서 평범한 직원으로 일해 왔다. 양식 요리사인 동생(23)과 열심히 일해 하루빨리 홀어머니(50)를 편하게 모시는 것이 꿈이었다. 이씨의 동생은 “엄마가 콜라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고통스러워 하신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9일 저녁 8시께 냉장고 문을 열고 페트병에 든 콜라를 꺼내 마셨다. 이 콜라는 전날 오후 어머니가 일하던 전남 담양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놓고 간 것이었다. 어머니는 박아무개(40·여)씨가 지난 1일부터 코카콜라 회사에 20억원을 달라고 협박하며 독극물 ‘그라목손’을 넣은 콜라란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라목손은 병두껑 정도의 양(5㏄)만 마셔도 치사량으로, 의식은 멀쩡하지만 여러 장기가 서서히 손상돼 치사율이 95%에 이른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이씨는 당시 콜라를 세 모금 정도 마시고, 동생에게 “콜라 맛이 이상하다. 왜 색깔이 녹색이냐”고 물었다. 이씨의 동생은 저녁 9시20분께 코카콜라 홈페이지에 글을 띄웠고, 밤 10시께 코카콜라 직원이 찾아와 콜라를 들고 갔다. 코카콜라 직원 2명은 40여 분 뒤 다시 찾아와 ‘흙탕물 같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밤 11시3분께 집 근처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서 코카콜라 직원과 경찰들한테서 ‘독극물 협박범을 잡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씨의 동생은 “병원에서 별 이상이 없다고 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10일 낮 코카콜라쪽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씨가 마신 콜라 안에 독극물 성분이 들어 있다는 국과수 검사 결과가 나온 뒤였다. 이씨는 10일 오후 2시52분께 전남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그라목손 중독 사실을 확인한 뒤, 저녁 8시29분께 순천향대 천안병원으로 옮겨졌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농약중독연구소 홍세용 교수는 “환자가 음독한 뒤 24시간 이후 도착해 치료가 늦어졌다”며 “폐 기능이 악화되고 있어 상태를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전남지역 주민들 사이에 ‘독극물 콜라’ 공포가 확산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은 매장에서 코카콜라 페트병 제품을 모두 회수했으며, 사건 발생 후 광주공장 생산라인을 중단한 코카콜라 쪽도 생산 재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