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금강산호텔 2층에서 이뤄진 납북자 김영남 씨와 남측의 어머니 최계월 씨, 누나 김영자 씨의 상봉은 눈물 속에서 시작됐으나 차차 얼굴을 익힌 가족들은 전북 군산에서 같이 살 때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날 이들은 저녁 2시간 동안 진행된 만찬상봉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28년간 헤어져 살았던 시간의 한을 달랬다.
○…최 씨는 만찬상봉장인 금강산호텔 2층 93번 테이블에 앉은 아들 영남 씨를 보자마자 손을 잡으면서 “우리 아들이야, 우리 아들”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영남 씨는 어머니 최 씨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자 “좋은 날인데 웃어야지”라고 다독였다.
영남 씨는 왼손으로는 누나 영자 씨의 손을, 오른손으로는 어머니 최 씨의 손을 잡고 이야기꽃을 피웠고 영자 씨가 귀엣말로 “이렇게 사니, 괜찮아?”라고 묻자 영남 씨는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영남 씨는 영자 씨에게 “결국은 누구 말대로 나라가 통일되긴 해야지. 이런 일이 보통 일이 돼야 하는데. 특별한 일이 됐어”라며 몰려든 취재진에게 부담스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영자 씨는 하얀 저고리를 입은 조카딸 혜경 씨에게 “요즘 나이에 맞지 않게 왜 한복을 입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혜경 씨는 “전체적으로 저고리를 입으면 커 보이고 여기 제 또래 여대생들은 저처럼 많이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며느리 박춘화 씨는 시어머니 최 씨 옆에 앉아 식사시간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만찬상봉을 끝내면서 이들 가족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상봉을 마친 뒤 영자 씨는 남측 취재진에게 “영남이가 평양에서 큰 평수 아파트에서 잘살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영자 씨는 또 “영남이가 어려움이 없이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동생이 놀랍게도 옛날 얘기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에게 지금 결혼한 사람이 옛날에 사귀던 그 사람이냐는 식이었다”고 소개했다.
영자 씨는 영남 씨의 자녀에 대해서도 “혜경이는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또랑또랑한 눈매가 기억난다. 철봉이는 일곱 살인데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여기(북)서는 ‘깰학년’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북한 당국은 29일로 예정된 영남 씨의 기자회견을 염두에 둔 듯 28일 남측 공동취재단에 “영남 씨와 관련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모두 서면으로 적어내라”고 요구했다.
영남 씨는 기자회견에서 전부인인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의 유골을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2004년 11월 일본 측에 메구미의 유골을 보냈으나 일본은 유골에 대한 유전자(DNA) 검사 결과 메구미의 것이 아니라며 그의 생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북-일 수교협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영남 씨는 메구미의 ‘사망 사실’을 밝히면서 일본의 비판을 반박하고 유골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4월부터 일본에 대해 유골 반환을 촉구해 왔다.
영남 씨는 또 자신과 메구미의 납북 경위에 대해서도 북한에 강제로 끌려온 게 아니라는 식으로 해명할 가능성이 있다.
▼엄마 빼닮은 김혜경▼김영남(45) 씨 모자 상봉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영남 씨의 딸 혜경(북한 이름 은경·19) 씨였다.
28일 혜경 씨는 할머니 최계월 씨와 아버지의 상봉을 지켜보며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훔쳐 내더니 2시간여의 상봉이 끝난 뒤에는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천진난만함을 보였다.
체구가 작고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인 혜경 씨는 1994년 사망한 어머니 요코타 메구미의 얼굴을 쏙 빼닮은 모습이었다. 김일성종합대 컴퓨터학과 1학년생인 혜경 씨는 가슴에 김일성 배지와 함께 금색의 김일성대 배지도 달고 있었다.
김영남 씨가 1986년 일본인 납북자인 메구미와 결혼해 낳은 딸인 혜경 씨는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때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혜경 씨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옷도, 책도, 맛있는 음식도 필요 없고 단지 원하는 것은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북한에 오는 것”이라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