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페스티벌 핑크공주`된 다운증후군 소녀

by 운영자 posted Jun 06, 200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에게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저는 섹시한 여자랍니다. 저와 함께 춤 추실분 어디계세요."

다운증후군 소녀 정은혜(17)양이 무대 위에 올랐다.

장소는 `제8회안티페스티벌`이 열린 서울 홍익대 체육관. 지난 2일 `문화미래 이프`(www.antifestival.co.kr)가 주최한 `안티성폭력페스티벌`에서 은혜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그동안 갈고 닦은 `나이트댄스`를 선보였다.

은혜는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국가인권위원회, 2006) 가운데 박경희 감독의 `언니가 이해하셔야 해요`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빅마마의 뮤직비디오 `크리스마스 캐롤`에도 출연한 `영화배우`다.

이날 공연에 앞서 선보인 3분 분량의 영상은 `10대 장애여성의 성에 관한 이야기`. 만화가인 엄마 장차현실(43)씨와 사춘기 소녀인 은혜가 나누는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엄마의 애정행각이 은혜에게 들통 난 순간, 아이는 의젓하게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충고를 한다.

"문 닫고 하세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은혜의 새아빠인 서동일(36) 감독은 모녀가 나누는 성에 관한 문답을 영상에 담았고, 무대에 올라가는 게 마냥 "신나고 즐겁다"는 은혜는 거침없이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장차현실씨는 "장애아 특히 장애를 가진 여자 아이의 경우 엄마들은 육체적으로 성숙돼가는 사춘기 딸을 걱정한다. 장애여성을 성범죄의 표적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지배적이기 때문"이라며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알아가는 은혜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지체 장애인의 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다운증후군 소녀

은혜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옴니버스 인권영화를 찍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언니가 이해하셔야 해요`에서 은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어하는 특별하지만 평범한 소녀로 등장한다.

어눌한 말과 생김새로 친구들에게 `뚱보메기`라 놀림을 당하고, 식당에서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눈초리를 받는다. 마음이 통하는 동네 함바집 아주머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나쁜 애가 아니거든요? 언니가.. 이해하셔야 해요"라며 반복해서 말을 건넨다. 은혜인 나는 `나쁜 아이가 아니`며 `다름을 인정해 달라`는 사춘기 소녀의 소망이 가감 없이 녹아있다.

<다섯개의 시선>을 연출한 이진숙 프로듀서는 "은혜의 연기에 따라 영화가 무산될 수도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 은혜가 그 많은 대본과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을 때의 감동은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은혜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박경희 감독은 은혜의 매력에 푹 빠져 아예 아이가 사는 경기도 양평 청계마을에 집을 지어 살 정도로 소녀의 막역한 친구가 됐다.

은혜에겐 영화 출연 경험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영화를 찍은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언니가 이해하셔야 되요. 영화배우 정은혜`라고 당당하게 사인을 한다. 장차현실씨는 아이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걸 막지는 않겠지만 소중한 경험으로 만족할 뿐 `영화배우 정은혜나 연예인 정은혜`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단다.

"은혜는 지난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신나는 `여름방학`을 보냈다. 아이가 외워야할 대사가 있긴 했지만 연기가 가능한 건 아니라고 본다. 시나리오 자체가 은혜의 일상을 녹여낸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이에겐 소중한 기회였고 경험이 됐다. 자신감을 얻었고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밖에 나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소중한 교육이다."





`뚱보메기`가 아니라 `핑크공주`로 불러주세요

경기도 양평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은혜는 `푸른숲학교`에 다닌다. 그동안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일반학교 3곳을 거쳐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장애`라는 핸디캡은 두 번째 문제였다. 장차현실씨는 `공부와 경쟁`을 부채질하는 일반학교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일반학교는 성적 위주로 아이들을 분류를 하잖아요.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오로지 공부뿐인데요. 이런 경쟁 속에서 아이가 행복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은혜는 `푸른숲`에서 음악, 미술, 수공예를 배우고 여행을 다니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있다. 우일이, 다은이.. 친한 친구이름과 특기, 만나게 된 사연을 끄집어내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엄마는 은혜 때문에 덩달아 소녀가 됐다.

"우리 집엔 17세 소녀의 웃음소리가 넘쳐요. 별일도 아닌 일에 깔깔거리는 감성 풍부한 은혜가 때로 어이없기도 하지만 저도 덩달아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동생 은백(2)이가 앙탈을 부릴 때 귀엽다는 은혜가 "엄마하고 아빠가 사랑해서 동생을 낳았어요"라고 말하자 엄마는 옆에서 거든다. "사랑하지 않아도 아이는 낳을 수 있어.." 이어 엄마가 "은혜야,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묻자 은혜는 씩씩하게 말한다.

"행복하게!"

`뚱보메기`라고 친구들이 놀렸던 은혜는 이제 자신을 `핑크공주`라고 소개한다. 가장 아끼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으면 "나는 공주가 된다"고. 핑크공주와 엄마가 나누는 `소녀들의 대화`가 축제를 보러온 관람객들의 귓전을 간질인다.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