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명동에 있는 대부업체 ‘러시앤캐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유리문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김미나(여·32) 대출심사팀장은 활짝 웃으며 고객을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시선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성은 화장과 머리 스타일이 너무 짙고 화려하면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죠. 남성은 손톱이 길거나 더러우면 자기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고요.” 대부업계 대출심사 경력만 7년차인 김 팀장. 그녀는 1999년부터 하루에 많게는 20명 이상씩, 그간 2만여명 고객을 만나면서 돈을 빌려줄지, 이자는 얼마나 받을지를 심사해온 대부업계의 프로다.
◆“돈 빌려서 튈 사람인지 척 보면 안다”
김 팀장처럼 대부업체 심사역이 하는 일은 시중은행 직원들과는 사뭇 다르다. 보증이나 담보 없이 순전히 채무자의 신용만 보고 돈을 빌려준다. 고객들 직업도 은행 창구를 찾는 사람들처럼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 고객의 외모와 언행 등으로 모든 걸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눈의 초점이 흐려지면 십중팔구 돈 떼이기 십상이다. 김 팀장의 대출금 회수율은 90% 이상. 족집게 같은 실력의 비결은 뭘까? 김 팀장은 “대출 받으러 금융기관에 나올 때 외모, 옷차림 등은 일부러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오히려 명품 옷을 입고 대형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객관적인 판단을 흐트릴 수 있기 때문에 평가 기준에서 아예 배제한다고 했다. 그녀는 신입사원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딸기 농사를 짓는 50대 중반 아저씨가 300만원 대출을 신청했어요. 진흙이 덕지덕지 붙은 장화와 작업복을 입고 온 데다 신용등급도 나쁘게 나와 200만원만 대출해드렸어요. 그런데 그분은 5년 안에 갚아도 될 돈을 1년도 안 돼서 모두 갚았습니다.”
자신의 직업과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대출 심사역에게 더 높은 신뢰를 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건어물 장수의 점퍼에선 건어물 냄새가 나야 믿음을 준다는 얘기다.
◆빚 갚을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
대출심사역과 마주앉았을 때에는 질문 내용, 말투, 의자에 앉는 자세 등에서 빚 갚을 의지가 배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고객은 대출 이자, 상환 기간 등 조건을 꼼꼼히 물어봐요. 의자를 책상에 바짝 붙여 앉아 메모도 하고요. 보통 10~20분 만에 끝나는 상담이 1시간 가까이 이어집니다. 이런 분들은 거의 100% 연체하지 않습니다. 자기 돈을 아끼는 만큼 남의 돈도 귀하게 여기니까요.” 반면 “다리를 꼬고 앉아 직원의 질문에만 ‘네… 네…’라고 답하는 고객에겐 신뢰를 주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거나, 한 집에 장기간 거주하는 것도 좋은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소라고 김 팀장은 소개했다. 그만큼 성실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해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갖고 있는 신용카드 수도 대출심사역의 관심 대상이다. 심사역들은 고객의 지갑에 신용카드가 3개 이상 있으면 사용액수를 떠나 소비성향이 강하다고 보고 나쁜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