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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아가씨 최민진씨. 다 큰 처녀가 하루 종일 인형을 끼고 산다. 조그만 인형에 드레스를 입혔다가 짤막한 미니스커트를 대본다. 줄자로 인형 허리둘레를 재고, 자기 손가락보다 가는 팔목 둘레를 체크한다.

민진씨의 직업은 인형 옷 디자이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람하고 똑같이 생긴 구체관절인형 옷을 만든다. 잠깐, 인형 옷 팔아서 돈을 번다고?

“열에 아홉은 토끼눈 뜨고 묻는다니까요. 장난감 옷 만드는 게 직업이냐구. 근데요, 이게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까짓 인형 옷’ 했던 이들, 사람 옷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브래지어, 스타킹, 속치마, 레이스 양산, 공주풍 드레스까지 그녀의 ‘작품’ 앞에선 입이 쫙 벌어진다. 그리고 또 한번, 옷 값 앞에서 ‘헉’ 한다. 손바닥만한 인형 옷 한 벌이 15만~30만원이다.

“죄다 수작업 해요. 너무 작으니까 기계로는 도저히 못 하죠.” 그녀는 손등과 팔 여기저기 찍혀있는 ‘다리미빵(다리미에 덴 자국)’과 손가락 사이 눌러 붙은 굳은살, 다리미 무게를 감당하느라 알통이 단단히 박힌 팔뚝을 훈장처럼 내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민진씨가 구체관절인형을 만난 건 인천디자인고 패션디자인과 2학년이었던 지난 2002년 봄 한 인형박람회에서였다. 꼬마 때부터 두루마리 휴지로 곰돌이 인형 옷 만드는 게 취미였던 그녀, 첫눈에 구체관절인형에 반해버렸다. 인형 값 72만원. 고등학생에게 어림없는 돈이었다.

한 달간 애간장 태운 끝에 짜낸 묘안. 엄마에게 학원비라 둘러대고 친구 통장으로 계좌 이체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원 선생님 흉내를 완벽하게 연습한 친구가 민진씨 엄마가 아닌 오빠의 확인 전화를 받고 당황해 모든 작전을 불어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엄마에게 둘러댄 변명. “옷 만드는 데 필요한 마네킹이에요.”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구체관절인형이 도착한 날 상자 뚜껑을 열어본 민진씨, ‘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공주 폼으로 우아하게 누워있는 걸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글쎄 안구는 떨어져 나갔고, 팔 다리는 덜렁덜렁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때 충격이란….”



민진씨는 그날부터 타오르는 창작 의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작품을 쏟아냈다. 공주풍 드레스, 찢어진 청바지, 미니스커트에 한복…. 여고생이 입지 못하는 옷들을 인형에 입혔다. 2003년 구체관절인형 옷 전문 사이트(www.victoria.co.to)를 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 작품을 내놓자마자 몇 초 안에 팔려나갔고, 편지를 보내는 일본팬도 생겼다. 이제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V사마’(턱이 뾰족한 일본 만화 캐릭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로 통한다.

대학은 안갔다. 한자릿수 석차를 유지했고 H여대 패션디자인과에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입학 포기각서를 썼다. 이유는 단 하나. 인형 만들 시간을 뺐기는 게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말렸던 부모님, 지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한창 바느질하다 둘러보면 엄마는 옆에서 실밥을 뜯어주고, 아빠는 자투리 천으로 지저분한 방을 쓸고 계신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대학진학을 포기했지만 한동안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기란 힘들었다. “한 1년 동안 ‘너 무슨 과 갔니?’ 하는 말 때문에 노이로제 걸렸어요. 대인기피증까지 생겨서 아예 집에 틀어박혀 인형 옷만 만들었어요.” 민진씨는 2004년 구체관절인형 전문회사 커스텀하우스에 의상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같은 일을 하는 이는 현재 국내에 20여명 정도. 그 중에서도 그녀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인형 옷 팔아서 어떻게 사냐”고 걱정의 눈빛을 보내던 친구들이 “최 사당님(사장님) 밥사주3(밥사주세요)!”하고 문자 보낼 때 제일 행복하다는 민진씨. 그녀의 꿈은 뭘까. “꿈이요? 어떻게 하죠? 이미 이뤄버린 걸요. 그것도 세상에 없던 직업을 제가 만들었잖아요.” 요 당돌한 스물한 살 아가씨에게 현실은 곧 꿈이고, 꿈은 곧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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