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참여형 도시’ 프로젝트 윤곽..브라질 꾸리찌바市등

by 운영자 posted Jan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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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9개월간 추진해 온 ‘참여형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의 윤곽이 드러났다.

1960년대 이후 관(官) 중심의 ‘톱 다운(Top down)’ 방식으로 진행돼 온 도시 개발의 발상을 바꿔보려는 ‘실험’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질이 떨어지는 한국의 도시환경 수준을 고려할 때 언젠가는 해야 할 시도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도시의 내·외형을 동시에 바꾸려는 대형 사업인 데다 주민들이 추진 주체가 되는 ‘운동’의 성격을 띤 만큼 섣불리 추진하면 부작용도 예상된다.

○ 시작은 하드웨어 개선부터본보가 단독 입수한 보고서는 살고 싶은 도시의 핵심 요소가 편리성→환경성→도시 미관→문화성 순으로 변천해 간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필요할 때마다 수도권 신도시를 만드는 등 정부 주도 개발로 양적 팽창은 했으나 도시민의 ‘삶의 질’은 아직 낮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이제는 관 주도의 도시 개발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요구를 직접 반영해 도시를 바꾸는 ‘자발적 도시 리모델링’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역설적으로 관 주도의 성격이 짙다.

보고서는 지난해 3월 미국의 머서휴먼리소스 컨설팅이 세계 215개 도시를 대상으로 벌인 ‘삶의 질 평가’에서 서울이 90위에 머물렀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참여형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지역 실정에 맞춰 제시한 도시개발안 중 지원 대상을 골라 단계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도시평가지표’를 개발해 재정 지원의 근거로 활용할 방침이다.

시행 초기에는 △담장 허물기 △걷고 싶은 거리 조성 △간판 정비 △하천 가꾸기 등 생활에 밀접한 사업을 지원하고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한다. 이어 종합복지관 등 도시 내 복지시설을 확충하는 중대형 사업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8월 말까지 브라질의 쿠리티바, 일본 도쿄 세타가야(世田谷) 구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등 해외의 참여형 도시개발 사례를 분석해 시범모델을 지자체에 제공할 계획이다.

○전국 단위 ‘범국민 운동’으로 추진정부는 사업 초기에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기반을 닦은 뒤 민관 합동의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르면 상반기에 대통령 직속으로 ‘참여형 도시 만들기 위원회’(가칭)를 신설해 건설교통부 농림부 등 유관 부처를 조율한다. 한국국토도시계획학회 및 각종 시민단체는 ‘도시사랑포럼’(가칭)을 만들어 측면에서 연구 조사를 지원한다.

동시에 각 지자체는 민관 합동으로 구성되는 ‘참여형 도시 만들기 추진단’과 ‘주민 지원센터’를 만들어 주민들의 의견을 모은다. 마을 단위로는 ‘주민협의체’를 조직해 이 운동의 ‘세포 조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정부가 이 사업을 위해 벤치마킹한 일본 마치즈쿠리는 1987년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를 설치한 뒤 주민협의회와 함께 ‘녹지와 물의 마을 만들기’ ‘주민 지혜 모으기’ 등의 사업을 추진해 주민들이 주도한 도시 환경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의 법적 근거는 열린우리당 주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가균형특별회계에 ‘참여형 도시육성 계정’을 신설하기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또 주민 주도로 도시 내 간판 개조 등을 위한 ‘경관법’ 제정과 주민협의체 등을 두기 위한 국토계획법 개정도 추진한다.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도도시계획학을 전공한 A 교수는 “주민참여 문화와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상황에서 이런 계획이 연착륙하기는 어렵다”며 “현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혁신도시’에 이어 또 다른 커다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 전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선, 총선보다 상대적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이 낮은 지방선거에서 도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단숨에 핵심 선거 이슈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찬성하는 전문가들도 관 주도의 도시 개발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주민들이 지자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면 공허한 정치적 슬로건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지자체 사업에 주민들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현재의 문화 수준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도시 계획안을 발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A 교수는 “일본의 주민 의회를 본떠 동 단위로 만든 주민자치센터가 여전히 동사무소 내 복지센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우리 지자체 문화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대진대 김현수(金현秀·도시공학) 교수는 “한국 도시의 수준을 질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사업이 시행되면 각 지자체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길 시민단체들의 옥석을 가리고 주민 참여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끌어 낼지가 과제”라고 말했다.

또 시대가 달라진 만큼 1970년대 ‘새마을 운동’처럼 정부가 앞장서고 국민은 따라가는 운동 방식이 오늘날에는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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