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똑똑하던 딸이…’ 노부부의 마르지 않는 눈물

by 우현민 posted Oct 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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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해?”

“그만 둬요.”

“밥 많이 먹고 살살 방에서라도 서서 왔다갔다 운동을 해야 해요. 산책도 같이 하고 놀러 다니면 좋잖아.”

“당신이나 밥 잘 드시고 건강해야지. 그만 해요….”

칠순을 넘긴 임철호 할아버지는 당뇨와 중풍 앓아 옴짝달싹 못하는 아내 송계숙(70) 할머니를 13년 째 돌보고 있다. 하지만 몸 성치 않은 이 노부부는 딸 현옥(39)씨 걱정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16년째 정실질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송 할머니는 당뇨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었다. 오른쪽 몸까지 마비증상을 보여 거동이 불편한 상태. 하루 종일 TV도 못 보고 방안에 앉아 있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구로공단에서 사무실 청소며 우유배달을 30년 넘게 해왔다.

고된 일로 한세월을 보낸 노부부가 그래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건 딸 현옥씨에 대한 사랑과 희망 때문이었다.

“못난 남자라도 데려다 같이 밥 해먹고 내 식구라고 하면 되는데… 그럴 사람이 없으니까, 제 정신으로 살아나갈 수 없으니까… 어떻게라도 낫게 하려고 별짓을 다하고 교회도 가고 기도원도 가보고 점쟁이도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현옥씨는 홍대 불문과 4학년 재학 중에 갑작스레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86학번인 그는 총여학생회 회장을 맡아 90년대까지 학생회 활동을 했다. “프랑스 문화원에 취직하고 싶었다”는 그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혼자 울거나 웃는 날이 많아졌다.

자신들 몸도 성치 않은데 딸 걱정에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노부부는 “딸 병이 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고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단다.

그동안 아내와 딸을 돌봐온 할아버지 역시 성한 몸이 아니다. 간경화로 인해 수시로 배가 아프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 할아버지는 허벅지에 몽우리가 있어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닌다.

폐휴지를 주우러 다니다가도 허벅지에 통증이 오기시작하면 길 위에 드러누워 뒹굴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워도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수입이라고는 할아버지가 폐휴지를 모아 버는 돈이 전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집안 살림에 보태고자,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길거리로 나선다. “도둑질만 빼고 길바닥에 있는 건 다 줍는다”는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하루 천원어치를 못 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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