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앞에 살인으로 끝난 17년간의 우정

by 우현민 posted Sep 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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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인터넷쇼핑몰 대표 사체발굴 현장"
27일 인천시 남동구 남촌동 폐기물 야적장에서 경찰이 피살된 인터넷쇼핑몰 업체 대표 한모씨의 사체를 발굴하고 있다./신민재/지방/경찰/사건 2005.9.27 (인천=연합뉴스) matil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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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서는 중.고등학교 단짝의 목숨도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단짝으로 지냈던 한모(31)씨와 오모(31)씨는 졸업 후에도 연락을 자주 하던 중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같이 하기로 하고 지난 1월 사이트를 개설했다.

한씨는 자동차 영업사원 일을 그만 두고 쇼핑몰 대표를 맡고 인천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던 오씨는 소개소 일을 계속하며 실장을 맡기로 했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전화 상담 여직원도 5명을 고용하면서 사업은 자리를 잡아 갔다.

처음에는 분유, MP3, 화장품, 애완견 용품 등을 판매하다가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두자 에어컨, 냉장고 등 가전제품 판매 쪽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10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온다는 기상 예보와 가격 비교 사이트에 최저가격으로 물품을 등록시켜 놓은 덕분에 에어컨, 냉장고 주문이 폭주했다.

주문이 밀려들면서 주문 물량을 조달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아예 고객들의 결제대금만 입금받고 외국으로 도주하기로 공모했다.

4월부터 에어컨과 냉장고를 주문한 고객에게는 `6월 10일 배송될 예정'이라고 알리고 신용카드 결제와 현금 입금을 통해 물품 대금을 미리 받았다.

고객 2천100여명으로부터 41억원을 거둬 들인 이들은 물품 배송일로 약속했던 6월 10일 사이트를 전격 폐쇄했다.

그러나 사이트 폐쇄 하루만인 11일 피해자들이 인터넷 카페에 피해자 대책위를 구성하고 경찰 수사 착수가 곧바로 이어지자 한씨는 심한 압박감에 오씨에게 자수의사를 전했다.

오씨는 한씨가 5월30일부터 6월10일까지 사기로 챙긴 41억원 중 23억8천만원을 상의없이 현금으로 집중 인출한 사실에 불쾌해하던 차에 경찰에 자수하겠다고 하자 한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이 운영하던 직업소개소 직원 2명을 포섭했다.

오씨는 이들에게 각각 1억원과 2천만원을 주기로 하고 12일 한씨를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술집으로 불러냈다.

오씨는 심하게 취한 한씨를 미리 임대받아 놓은 남동구 남촌동 야적장으로 데려간 뒤 직원 1명이 망을 보고 또다른 직원 1명이 한씨의 팔과 머리를 잡고 있는 사이 한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중학교 입학 이후 17년간 쌓아 온 둘의 우정이 40억원에 달하는 거액 앞에서 땅에 함께 묻혀 버리는 순간이었다.

오씨는 범행 뒤 살해 공범들에게 1억2천만원을 주고 4층 건물 매입에 7억7천만원, PC방 임대 2억원, 채무관계 정리 8천만원, 암매장 장소 임대 5천400만원 등 석달여동안 15억2천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를 살해한 죄책감 탓인지 오씨는 27일 현장검증 장소를 찾아 온 한씨 아내의 눈물을 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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