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술좀 그만드세요

by 인선호 posted Jul 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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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알콜중독 55만명 가정마저 비틀거린다

주부 이형선(가명·여·34)씨는 석 달 전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다.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간 그녀는 “가만히 있는 내게 차가 덤벼들었다”고 했다. 당시 이씨는 소주 6병을 마신 후 흐느적거리며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질 때마다 술로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남편은 “여자가 어디 할 일이 없어서 술을 마시느냐”고 몰아세웠고 그럴수록 이씨는 더 깊이 술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동안 7살·6살짜리 딸 둘은 고아처럼 버려졌다. 술에 취해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깨어나면 “내가 죄인”이라며 가슴을 쳤다.

국내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의 숫자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알코올 의존증이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금단(禁斷)현상을 보이거나, 음주로 인해 사회적·직업적 장애가 나타나는 등 음주의 양상이 병적인 상태에 이른 지경을 뜻한다. 3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보건조사 결과 술 마시는 여성 중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1998년 3.1%에서 2001년 10.5%로 3배 이상 늘어 약 55만명에 이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현재 집계가 진행 중인 2004년 수치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 여성도 1999년 47.6%에서 2003년 49%로, 월 1회 이상 술을 마신다는 여성은 44%에서 58%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특히 30·40대 여성의 알코올 의존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임신부나 가임(可妊) 여성의 음주는 유산, 사산, 기형아 출산의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고 말한다.



주부가 알코올 의존인 경우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지난해 강원도 춘천에서는 남편이 출근한 후 혼자 술을 마시다 우유를 먹고 있던 아들(2)을 이불로 덮어씌워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붙잡혔다. 권씨는 경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술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경기도 다사랑병원 신재정 원장은 “한 가정의 주춧돌인 어머니가 흔들리면 가정 전체가 흔들리고 아이들도 정서적 안정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술 마시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사회의 냉대와 편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6년째 치료 중인 박현숙(가명·36)씨는 “보수적인 아버지가 ‘술 먹는 딸년은 내딸이 아니니, 집안 망신 시키지 말고 연(緣)을 끊자’고 했다”며 울먹였다.

서울알코올상담센터 박애란 소장은 “남성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치료를 받는 반면, 여성은 가족들에게조차 배척당하고 있다”며 “아무리 여권이 신장됐다고 해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술 마시고 비틀거리는 여성은 용서가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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