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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9일 청와대.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릴리(James R Lilley)가 대통령 전두환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친서로, 정치범 석방과 자유언론 신장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은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계엄령 선포는 초읽기였다.

전두환이 편지를 다 읽자 릴리는 ‘본론’이 담긴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계엄령 선포는 한·미 동맹을 저해할 수 있으며 1980년 광주에서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재발할 수 있습니다….” ‘평소 대화를 독점하고 자기 말에 자기가 웃던’(저자의 표현) 전두환은 90분 동안의 면담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최광수 외무장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계엄을 선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사관의 한국계 여직원이 복도에서 릴리를 껴안았다. “고마워요! 그 일을 막아줘서 고마워요…!”

릴리의 회고록인 이 책에 실린 비화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거나 단지 진실의 일면만을 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격동의 세월 속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의 육성이 가진 힘은 매우 크다. 이 책의 원제는 ‘중국통(China Hands)’.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정보요원과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의 인생은 우리가 신문 1면에서 읽었던 가슴 덜컹하는 기사의 뒷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마도 이렇게 재미있는 회고록은 드물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개입 70년 역사를 단 한 사람의 일생에 담아 밀도 있게 펼치는 이 책은, 바로 그 현장에서 실무자로 일했던 생생한 체험과 기록이 간결하고 우아한 문체 속에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보여지는 릴리의 모습은 철저한 리얼리스트다. 쓸데없는 관료주의를 지독하게 혐오하고 오직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일의 진행’에만 관심을 둔다. 스탠다드오일 중국 지사에 근무한 아버지 때문에 1928년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태어난 그는 12살까지 그곳서 자라며 중일전쟁을 겪었고 6·25 발발 소식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들어간 뒤 필리핀·캄보디아·라오스·홍콩에서 요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닉슨과 마오쩌둥의 역사적인 중·미 화해 직후 베이징 주재 미국 연락사무소의 비밀요원으로 일했고, 1980년대 초엔 대만 주재 미국 대표부 대표였다. 이어 1987년 6월항쟁 당시의 주한 미국대사,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의 주중 미국대사를 지냈다.

그는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감상적인 인식은 천박하고 위험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단순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선 이 시각은 사실 대상이 되는 입장에선 무서울 정도로 냉혹하다. 그는 이 책에서 뻔뻔스러울 만큼 솔직하다. 1987년 6월 당시의 한국의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민정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는데, “노태우는 이럴 때 우리가 지원해주면 우리 말을 들어 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6·29선언 직전 주한미군 사령관인 리브시 장군이 “한국군이 (시위 진압을 위해) 서울로 진입할 경우 미군은 그것을 막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거나 불안해진 노태우가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할 생각을 했다는 소문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언급된다.

그는 “나는 역사적으로 중국에서의 외국인의 역할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에서 미국의 역할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암시한다. 분노하기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은, 그가 한국에서 민주화를 지원하고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숨겨주면서도 경제·군사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 모든 정책이 지극히 현실적인 미국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모든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중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을 체스판의 말처럼 치밀하게 배열하고 있다는 것. 아메리카 지도에서 미국밖에 보이지 않는 우리와는 무척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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