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 ‘북부동파’ 행동대장 최모(38)씨는 1994년 9월 9일 오전 6시쯤 부하 10여명과 함께 서울 신사동 사거리에서 ‘남부동파’ 행동대장 오모(23)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두 조폭이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세력을 키운 뒤 강남권 유흥가로 진출하기 위해 세력다툼을 벌이다 일어난 참극이었다.

당시 사건이 일어난 곳은 신사동 사거리 대로변이었다. 주변 목격자도 많았다. 경찰은 사건 직후 7명을 검거했지만 주범 최씨 등 3명의 행방은 묘연했다. 신출귀몰한 최씨의 도피생활은 무려 11년간 계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사건 직후 성형수술을 했다. 얼굴에 있던 10㎝ 길이의 흉터가 없어졌고 몸무게는 30㎏이나 줄였다. 최씨의 주민등록증 사진만 갖고 있던 경찰이 완전히 달라진 최씨를 찾을 순 없었다. 실제로 경찰이 확보하고 있던 최씨에 관한 정보는 사진 외에 키 178㎝, 몸무게 100㎏의 거구로 스포츠형 머리를 했다는 것뿐. 그렇지만 1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최씨는 호리호리한 체구로 변해 있었다.

이러다 보니 경찰이 허탕을 친 적도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 과정에서 분명히 최씨가 나이트클럽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뒤쫓아갔지만 잡고 보니 엉뚱한 사람인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더구나 최씨는 6개월에 한 번씩 거처까지 옮겼다. 최씨는 살인혐의로 도주하면서도 2001년 서울 서초동에서 인질강도를 벌이는 등 다른 범행을 저지르고 사채로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최씨와 같은 조직에 몸담았던 인물이 경찰에 제보를 하면서 최씨의 ‘꼬리’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가 최근 일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집에 가끔 나타난다는 첩보에 따라 2주간의 잠복 끝에 지난 3일 집 밖으로 나오던 그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부유층 주택단지에서 대지 200평에 달하는 호화주택을 얻어놓고 동거녀와 9살 난 아들까지 두고 살았다.

최씨는 도피 중 얼굴모습을 바꾸고 살을 뺐을 뿐 아니라, 태국 격투기인 무에타이까지 하루에 3~4시간씩 연마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 5명이 동원됐고, 격투 도중 최씨의 발에 맞은 경찰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5일 최씨를 살인혐의로 구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