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정책''이 카드災殃 불렀다

by 이규진 posted Jul 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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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장 남발… 네집중 한집꼴 파탄
빚독촉에 자살… 가정붕괴 잇따라

정부 정책실패와 카드회사들의 과잉경쟁이 낳은 카드남발 사태가 가져온 결과는 ‘재앙(災殃)’이라는 말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카드대란은 한국경제의 파탄과 자살 신드롬을 불러왔고 지금도 수많은 서민들과 중산층이 그 휴유증에 시달리고있다.
정부의 규제완화에 맞춰 카드회사들이 신용카드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한 것은 1999년.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는 한국경제가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IT버블(거품)의 붕괴 가능성이 고조되던 때였다. 마침내 2000년 하반기 숱한 벤처기업들이 무너지고 수출이 급감하면서, IMF외환위기에서 갓 벗어난 한국경제가 다시 침몰 위기를 맞았다. 이 때 ‘구원자’로 나선 것이 왕성한 민간소비에 힘입은 내수(內需)경기였고, 내수에 불을 땐 1등 공신이 바로 카드남발이었다. 당시 카드 발급수는 1999년 3899만개에서 2002년 1억481만개로 무려 5.5배나 급증했고, 심지어 10대 미성년자들까지 지갑에 카드를 넣고다니며 소비에 앞장섰다. 덕분에 내수경기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말까지 거뜬하게 버텼다. 의도됐든, 아니든 카드남발은 선거를 앞두고 경기를 부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3년초부터 재앙이 왔다.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들이 양산됐고, 가계부채가 260조원에 달했다. 네집중 한집꼴로 신용불량자 가정으로 전락하는 등 가계가 급속히 피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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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 시작된 내수침체는 지금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IT버블 붕괴를 겪었던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내수경기가 회복되었지만 한국만 유독 내수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비실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한국의 내수침체의 근인(根因)은 바로 카드남발이 초래한 가계부실”이라며 “수출호황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회복되지 못한 것은 가계부실 문제가 너무 크기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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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만일 카드버블이 없었더라면, 지난해 3%에 그쳤던 경제 성장률이 5%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만일 정부가 신용카드 거품을 사전에 예방했더라면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1.14~2.22%포인트 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KDI(한국개발연구원)도 신용카드 거품 붕괴의 영향으로 민간소비가 1%, 경제성장률은 0.6% 포인트 내려간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카드남발은 지난해 LG카드사태 등 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카드대란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른바 ‘카드빚 자살’ 신드롬이 대표적이다. 1년전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 14층에서 손모(여·34)씨가 빚독촉에 시달리다 어린 세 자녀를 창문 밖으로 던진 뒤 자신도 함께 뛰어내려 숨졌다. 원인은 바로 카드빚 2000만원과 은행빚 1000만원이었다. 지난해 12월초 경기 시흥에서 김모(42)씨 일가족 4명이 승용차 안에서 제초제를 먹고 숨지는 비극을 부른 것도 카드빚이었고, 지난 5월 채모(여·52)씨가 지하철역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도 딸의 카드빚(1억5000만원)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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